“권고적 주주제안 마련으로 ESG 질적 개선에 나서야”

[선진 자본시장을 위한 해법은]…한국편④
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 등록 2022-08-23 오전 5:20:00

    수정 2022-08-25 오전 11:22:08

[이데일리 유준하 기자] “왜 국민연금은 사회적 기대만큼 소수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습니까?”

지난 6월30일 자본시장연구원과 고려대학교 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공동 개최한 ‘ESG 투자의 지속 가능성’ 심포지엄 토론회에서 유일하게 나왔던 질문이다. 주제 발표와 패널 토론이 끝난 막바지 무렵, 주제 발표자였지만 이날 가장 적극적인 질문을 던진 사람은 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였다.

ESG(환경·사회·거버넌스)는 최근 국내 자본시장에서 뜨거운 이슈다. 자회사를 물적분할한 뒤 재상장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은 물론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아이파크 붕괴사고까지 모두 국내 자본시장이 ESG를 강조하게 된 주요 배경이다.

김우찬 교수는 ESG 중에서도 특히 G에 해당하는 거버넌스에 정통한 전문가다. 지난 20년간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권리 강화를 강조해왔고 현재 경제개혁연대와 경제개혁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이데일리는 ESG를 보다 질적 개선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권고적(Advisory, non-binding) 주주제안을 제시한 김 교수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사진=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거버넌스or지배구조?” 혼용되는 G의 명확한 의미는?

“개인적으로 가능하면 기업거버넌스로 쓰고 지배구조라는 말은 쓰지 않아요. 이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기업거버넌스는 경영자, 지배주주를 견제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지배구조라는 말로 쓰일 경우 컨트롤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거든요.”

본격적으로 권고적 주주제안의 필요성을 듣기에 앞서 흔히 지배구조라고 쓰이고 있는 거버넌스의 명확한 개념을 질문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실제로 국내 언론에서는 대부분 G를 지배구조로 기재하고 있다. 다만 거버넌스라는 의미와 지배구조라는 말에는 엄연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1990년대 중반에 과거 선배님들이 번역하는 과정에서 애를 굉장히 많이 쓰셨는데 처음에 기업통괄체제와 기업지배구조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기업지배구조로 정했고 이게 문제가 된 것”이라며 “우리는 1950년대부터 기업지배구조라는 말을 썼는데 당시 어떻게 기업을 컨트롤하느냐, 지배하느냐에 대한 의미로 썼기 때문에 지금 지배구조가 두 가지 뜻을 갖게 된 것”이라고 짚었다.

예컨대 ‘지배주주 일가가 지분 추가 매수를 통해 지배구조를 견고히 했다’는 문장에서의 지배구조와 거버넌스는 전혀 다른 의미인 셈이다. 김 교수는 “기업지배구조원의 보고서를 통해서도 앞으로 기업지배구조라는 말 대신 기업거버넌스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며 “기업거버넌스라는 말은 굉장히 명확한 개념으로 경영자, 지배주주를 견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지배주주 견제 수단으로서의 주주제안권, 개선 방향은?

국내 상법은 100분의 3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소수주주에 한해 주주제안권을 보장한다. 단 100분의 10 미만의 찬성밖에 얻지 못해 부결된 내용과 동일한 의안을 부결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다시 제안하는 경우 등 일정한 경우에는 제외된다. 주주제안권의 ‘법적 구속력’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주주제안제도는 구속력이 있는 제도인데 이게 만일 주주총회 표결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으면 통과가 되고 통과가 되면 이사들은 이를 집행할 의무가 생긴다”며 “이처럼 강력한 만큼 상법에 규정된 내용들 그리고 회사 정관에 정한 내용들 이외에는 절대 주주제안을 올릴 수 없게끔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오히려 권고형인 미국식 주주제안제도보다 훨씬 강력한 셈이다. 다만 강한 구속력이 있다보니 논의할 수 있는 내용에 상당한 제한을 걸어둔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식 주주제안제도는 권고형으로 주주의 찬성을 얻었다 해도 이사회가 하지 않아도 된다”며 “이렇다보니 보다 다양한 이슈에 대한 제안이 가능하고 실제 표결에도 부쳐진다“고 말했다.

이에 현행 주주제안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되 권고적 주주제도도 반영하는 것이 보다 다양한 환경(E), 사회(S) 이슈에 대한 논의를 가능케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구속력은 없지만 주주제안 가이드라인, 주주도 용인을 하는 범위 내에서 경영자의 ES경영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올해 뜨거웠던 소규모 펀드들의 주주권리 행보…문제는?

이처럼 제한된 주주제안권 속에서도 올해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소규모 펀드들의 주주권 행사가 눈에 띄었다. 올해 초 사조오양 지배주주와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을 비롯한 소액주주들과의 감사위원 선임 표 대결에서 차파트너스 측이 제안한 감사위원이 선임됐고 BYC 2대주주인 트러스트자산운용은 이사회 의사록 공개를 요구하며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보이고 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국내 작은 헤지펀드들이 올해 주총 때 열심히 했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고무적”이라며 “다만 문제는 국내 헤지펀드들에게 국민연금이 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은 투자일임 방식으로 국내 주식을 책임 투자형 펀드에 맡긴다. 이렇다보니 위탁 운영사가 주식을 사도 그 소유권은 국민연금 공단에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구조에서는 국민연금이 모든 의결권과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는 “위탁운영을 할 때 차라리 국민연금이 해당 펀드의 유한책임 사원으로 들어간다면 해당 펀드가 매수하는 주식의 소유권은 국민연금이 아닌 펀드의 것이 된다”며 “이 때 국민연금은 일종의 수익자, 수익증권 매수자로 되는데 다른 나라들은 다 이런 방식으로 행동주의 펀드들에 위탁을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렇지 않은 지금 상황은 국민연금이 모든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김 교수는 “이렇게 하는 게 재계 입장에서도 유리한 측면이 있는게 재계가 기금운용위원회 등에 들어와 있고, 이는 다시 말해 재계가 국민연금의 주주권을 감시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근데 만일 유한책임사원으로 행동주의 펀드에 들어간다면 재계가 통제권을 잃게 되는 셈인 만큼 재계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실제 액션은 작은 행동주의 펀드들이 합니다. 무슨 공제회나 민간 금융기관 돈을 가져와서 이들을 LP로 조달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보니 규모가 다들 작아요. 이렇다보니 대상 회사들도 전부 작을 수밖에 없지요. 외국계 펀드들은 돈이 많고 규모가 크다 보니 삼성전자, 현대차 등에 주주행동을 펼칠 수 있는 것이고요.”

국내 최초로 상장사에 권고적 주주제안 근거 마련을 요구하다

올해 초 경제개혁연대는 APG로부터 위임을 받아 정관 변경에 대한 주주제안을 HDC현대산업개발에 제출한 바 있다. 지난 2월8일 당시 주주제안이 제출된다는 소식에 HDC현대산업개발 주가는 6.93% 상승했고 HDC현산 측이 주주제안을 일부 수용한 3월4일에는 주가가 4.36% 상승했다. 주주제안을 향한 시장 반응은 고무적이었다.

김 교수는 “광주에서 사고가 두 번째로 터지고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APG측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뭔가라도 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주주제안을 하자고 했다”며 “우리는 주식이 없으니 APG가 위임을 해주면 우리가 드래프팅을 하겠다고 했고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제안 내용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HDC현산 측은 권고적 주주제안에 대한 권고 마련은 당시 제외한 채 일부만을 수용했다. 김 교수는 그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정관에 도입한다는 점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 있었을 것”이라며 “허용되면 많은 주주제안들이 들어오고 또 언론의 주목을 받게되니 이런 요인들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봤다.

“사실 지난해부터 권고적주주제안을 도입해야 되겠다는 목소리를 냈고 여러 회사에 공문을 보냈지만 모두 거절당했어요. 그러던 차에 APG로부터 연락이 왔고 올해가 되어서야 이제 이루어진 거예요.”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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