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택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14일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사무실에서 진행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얼마만큼, 어느 깊이로 가져갈 것이냐는 통화정책 대응 방식에 달려 있다”며 “인플레이션 안정엔 경기 불황이라는 비용이 따르지만, 어차피 겪어야 할 불황이라면 보통 수준의 침체를 겪을 것인가 아니면 미뤘다가 고물가 시대를 연장시켜 생활비 위기를 오래 가게 해 더 큰 폭의 침체가 지속되도록 할 것이냐를 생각하면 선택해야 할 것은 명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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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한 적이 있는 윤 교수는 국내 통화정책 분야에서 첫 손에 꼽히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윤 교수는 중앙은행이 실질금리를 높여 인플레이션을 잡을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금융시장 혼란을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내다봤다. 또 우리나라 기준금리를 미국보다 높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윤택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몰랐다. 현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올해 전반기는 인플레이션 예측 에러(Inflation forecast error) 기간으로 보인다. 방송이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보더라도 기대보다 물가 상승률이 높다는 표현이 암묵적, 명시적으로 있다. 통화정책도 늦은 감이 있지 않나 싶다. 물가 상승 우려가 높아지면서 금리가 더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아졌다. 미국은 팬데믹 대응 정책으로 유동성이 많이 풀려 있었고 재정정책도 상당히 대규모로 나왔다. 물가 상승률의 상당 부분은 팬데믹 관련 경기 확장정책의 여파라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으로 에너지, 식량 가격이 상승하고 물가 상승률이 기대보다 높아졌다. 코로나19 후반기에 펜트업(Pent-up) 수요가 나왔지만 공급망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장기화될까.
△미국의 경우 2024년 2% 물가목표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상승률이 예상된다.(연준은 2024년 물가 상승률을 2.2%로 목표치보다 높게 잡았다.) 이에 비춰보면 우리나라도 2024년까지는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보다 높은 수준을 보일 것이다. 다만 통화정책이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물가 상승률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에너지, 식량 수입국이고, 다른 나라보다 후행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부분이 있다.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물가가 높은 것을 걱정해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많이 비교된다. 그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
-MZ세대들은 인플레이션이 참 낯설다. 물가 때문에 임금이 정말 오를까에 대한 의심이 있다.
△지금의 물가 상승은 생활비 위기다. 1970년대와 달리 지금은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고 할부 금융이 많다. 월급을 받으면 지출 구조가 딱 정해져 있는데 한쪽에서 비용이 올라가면 이를 메울 곳이 마땅치 않다. 전 계층에 걸쳐서 생활비 위기가 올 수 있다. 50~60대도 70년대에 생활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새롭게 겪는 측면이 있다. 특히 젊은층은 활동성이 높아 교통비나 교류비용이 많아져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생활비 위기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물가가 오르니까 임금 상승으로 전가될 가능성도 다분하고 이로 인해 물가가 다시 오르게 될 가능성도 크다.
-통화정책으로 물가 안정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어설프게 하면 물가는 물가대로 오르고, 경기는 경기대로 꺾이지 않을까 싶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가시화되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인플레 안정을 택하면 경기 둔화, 심하면 경기 침체를 겪어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것인데 ,인플레이션 안정이냐, 경기 침체냐는 선택의 문제다. 다만 스태그플레이션 자체를 얼마만큼 어느 깊이로 가져갈 것이냐는 통화정책 대응 방식에 따라 상당히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인플레이션 안정은 공짜가 아니다. 비용이 있다. 그 비용이 경제 불황이다. 그렇다고 인플레이션 안정을 선택하지 않으면 생활비 위기가 상당히 오래 갈 것이다.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플레이션 안정을 택해 보통 수준의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냐, 고물가 시대를 연장시켜 생활비 위기를 더 오래 가게 해 미래에 더 큰 폭의 경기침체를 불러올 것이냐를 고려하면 선택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지금 물가가 조금 오른다고 무슨 문제냐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인플레 우려와 경기침체 우려가 번갈아 가면서 금융시장을 흔들어놓고 있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겠다고 분명하게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 더 나을까?
△ 조심해야 할 것은 ‘애매모호한 정책 시그널(ambiguous policy signal)’이다. 물가를 잡는 것처럼 하는데 경기침체를 너무 걱정하는 말들을 내놓으면 시장과 소통하는데 상당 부분 어려움이 생긴다. 애매모호한 정책 시그널이 최소화되도록 조심해야 할 때이다.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등한시한다고 하면 금융시장에서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해 혼란이 올 수 있다.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하겠다고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정책) 결정을 해야 예상 인플레이션도 안정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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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이 물가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면 우리나라도 빅스텝(정책금리 0.5%포인트 인상)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나라도 중립금리 이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할까?
△현재는 공급 충격이 큰 국면이라 중립금리 추정의 불확실성이 크다. 불확실한 중립금리 추정치에 기준금리를 맞추기보다 실질금리가 변동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정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 변동분보다 금리 상승분이 더 크게 이뤄질 수 있도록 운영을 하면 물가목표제 본질에 가깝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금리를 얼마나 올려야 할까? 한미 간 금리 역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올해 2% 내외, 내년 3%까지 갈 것이라고 하는데 적어도 우리나라는 2%보다 높아야 한다.(연준의 금리 점도표에 따르면 올 연말 정책금리 중간값은 3월 1.9%에서 6월 3.4%로 상향 조정됐다.) 최근 자금 이탈에 대해서 많이 얘기하는데 미국과의 금리 차를 2017~2019년(한미 금리 차 -1.0~0.25%포인트)보다 더 높게 가져가는 것이 좋다. 금리 역전은 인플레이션 안정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된다. 미국 금리가 1% 미만일 때는 우리가 미국보다 낮아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는데 미국 금리가 3%인데 우리가 2%라면 얘기가 다르다. 미국 금리 2%만 갖고 운용해도 안전자산으로서 괜찮다는 투자자들이 있을 수 있다. 미국 금리가 2~3% 가는데 우리가 대내 경제를 감안해 그보다 낮게 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금리 차를 반대로 해놓고, 즉 자본유출의 원인을 제공하고 난 다음에 자본 유출을 걱정해야 하는 정책 속내는 뭔지 모르겠다.
-중립금리를 공개해야 할까?
△미국 리치몬드와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중립금리를 공개한다. 실명제로 어떤 프로그램을 써서 어떻게 작동돼 있다고 명확하게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립금리를 공개하려면 잠재 국내총생산(GDP), 잠재성장률 지표를 공개하고 1970년대부터 올해까지 시리즈로 연관성 있게 어떻게 추정됐는지를 실명제로 공개해야 한다. 명확하게 공개해야 불확실성이 있어도 서로 논의를 거쳐서 할 수 있다. 숫자만 갖다 주면 그게 맞는지, 아닌지 모른다. 한국 경제학자층도 굉장히 두텁기 때문에 나름대로 검증하고 의견을 가질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실명제로 투명하게 가야 한다.
■윤택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1983년·1988년 서울대 경제학 학사·석사 △1994년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시니어 이코노미스트 △조지타운대 겸임교수 △국민대 부교수 △콜롬비아대 겸임교수 △2011년 이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