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집값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주택 수요가 강해지며 매물이 부족한 데다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역사상 최저까지 떨어지면서, 집값이 15년여 만에 최대폭 급등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역대급’ 거품이 끼어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미국 집값 1년새 13% 이상 폭등
25일(현지시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다우존스 지수(S&P Dow Jones Indices)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계절조정치)는 전년 동기 대비 13.2% 급등했다. 미국 전역의 집값이 평균 13% 넘게 올랐다는 의미다. 2005년 12월(13.5%↑) 이후 15년3개월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이 지수는 칼 케이스 웰즐리대 교수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공동 개발한 미국의 대표적인 주택가격지수다. 2000년 1월을 100으로 놓고 지수를 산출한다. S&P와 부동산 전문가들로 구성된 지수 위원회가 관리를 맡고 있어 공신력이 높다.
케이스-실러 지수는 주가 등 다른 자산가격과 달리 팬데믹을 기점으로 변동이 크지 않았다. 본격 급등세를 탄 건 지난해 8월부터다. 지난해 8월 이후 상승률은 5.8%→7.0%→8.4%→9.5%→10.3%→11.2%→12.0%→13.2% 등으로 계속 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집값 폭등기 당시 수준에 근접한 것이다. 케이스-실러 지수를 산출하기 시작한 1988년 이후 역대 최고 오름 폭은 2005년 9월 당시 14.5%다.
최근 집값 급등은 수급 측면이 첫 손에 꼽힌다. 복잡한 도심 아파트를 피해 넓은 교외 주택으로 이주하려는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S&P 다우존스의 크레이그 라자라 매니징 디렉터는 “최근 데이터는 코로나19가 도심 아파트에서 교외 주택으로 이사하도록 부추겼다는 견해와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께부터 집값이 폭등한 건 재택근무 도입 시차와 맞물린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최근 미국 부동산 시장 분위기다.
코로나19 이후 풀린 엄청난 유동성 역시 한몫했다. 지난 20일 기준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3.00%다. 올해 초 2.6%대를 보였다는 점에서 약간 오르긴 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말만 해도 3.7%대였다. 게다가 미국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주택 규제가 한국에 비해 완화적이다.
|
실러 “100년간 이런 폭등 못 봤다”
신규주택 중위가격은 37만2400달러로 1년새 20.1% 폭등했다. 미국 전체 주택시장에서 기존주택 거래는 약 90% 비중이다. 나머지 10%는 신규주택 거래다.
로런스 윤 NAR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시장에 매물로 나온 집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주택 매매 건수는 감소했지만 시장은 여전히 뜨겁다”고 했다.
그러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거품 우려 역시 부쩍 많아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부동산 시장 과열과 흡사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지수를 공동 개발한 실러 교수는 최근 CNBC에 나와 “투자자들 사이에 서부개척 시대의 무법천지 같은 사고방식이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주택시장의 거품 가능성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100년간 어떤 자료를 봐도 집값이 지금처럼 높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실러 교수는 “지금 집값은 거품이 나타났던 2003년과 비슷하다”며 “인플레이션 공포가 장기성 자산의 하락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