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해우소] 연차 쓰려면 '가위바위보' 이겨야 한다?

직장인 40% "연차는 그림의 떡"
병가·연차 자유롭게 못쓰는 직장인들, 비정규직·프리랜서 더 심해
노무사 "유급병가 제도와 상병수당 제도 신속히 마련돼야"
  • 등록 2020-10-03 오전 12:30:12

    수정 2020-10-03 오전 12:30:12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기성세대를 풍자하기 위해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라떼는(나 때는)말이야”는 누군가에게는 웃어넘기지 못할 말일 수도 있다. 이데일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직장인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공인노무사에게 노동관련법에 저촉되는지 들어봤다.

(사진=이데일리DB)
“매달 연차신청을 하는데, 하루 가능한 인원은 1명 뿐…원하는 날 쓰려면 가위바위보까지 해야 합니다”

직장인 10명 중 4명은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자신의 연차 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27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전국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연차·병가휴가 등 사용실태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39.9%가 법정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했다. 비정규직(비상용직)의 50.0%가, 프리랜서·특수고용 노동자의 53.3%가 연차휴가 사용에 제약이 있다고 밝혔다. 반면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한 정규직은 33.2%다.

월급 150만원 미만의 노동자는 52.4%가 연차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했지만 임금이 500만원을 넘는 노동자는 20.9%만이 제약을 받는다고 답했다.

연차 쓰려고 가위바위보까지?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 등 고용상태가 불안정할수록 연차휴가 사용에 제약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 노동자 중 직장에 유급휴가 제도가 없다고 답한 비중은 51.7%로 절반을 조금 웃돌았다. 반면 비정규직과 프리랜서·특수고용 노동자는 각각 77.5%, 85.5%가 직장에 유급휴가 제도가 없다고 답했다.

단체에 제보된 대표적인 ‘휴가 갑질’ 사례로는 감기 몸살로 연차를 냈다가 다른 직원들 앞에서 “뚱뚱해도 감기에 걸릴 수 있냐? 왜 추위를 타냐”는 외모비하 발언이다. 또 집안 일 때문에 연차를 쓰려 했다가 “연차휴가를 쓸 정도로 회사 일이 없냐”며 면박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8년 동안 결근 한 번 없이 근무하면서 연차휴가를 사용한 적이 없고, 연차휴가 보상 수당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한 노동자도 있었다.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A씨는 “회사는 매달 연차 신청을 받는데 신청 가능한 인원은 하루 한 명으로 제한하고 있어 동료들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그는 “원하는 날에 연차를 사용하려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겨야 겨우 쓸 수 있을 정도”라며 “쉬는 날을 정했어도 회사가 출근하라면 출근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A씨는 “출근하라는 회사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결근으로 처리돼 불이익을 받는다”고 했다.

원하는 시기에 연차 사용할 수 있어

이처럼 고용형태에 따른 ‘고무줄식’ 연차 사용과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합법한 것일까?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용자는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노동자가 연차를 원하는 시기에 사용하게 해야 한다.

사용자는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직장갑질119 심준형 노무사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에 연차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노동자는 자유롭게 연차를 사용할 수 있다. 또 사용하지 않은 연차에 대해선 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 노무사는 “노동자는 연차 사용계획서를 내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단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유급병가제도와 상병수당(일을 하다 다치거나 아플 때 치료비 외에 따로 더 받는 수당) 제도 두 가지가 모두 없는 국가는 한국과 미국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일주일 정도의 법정 유급병가 제도를 도입하고, 저임금·비정규·특수고용·중소영세업장 등 유급병가 제도 사용이 어려운 계층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에서 상병수당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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