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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방문한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방법원 1층 입찰 법정. 이날 경매에 오른 다세대주택에 입찰했지만 낙찰받지 못한 이모(38)씨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1억 45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800만원 더 높게 부른 사람이 있어서 떨어졌다”며 “매매시장은 요즘 잠잠하다는데, 경매시장은 여전히 사람도 많고 낙찰률도 높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시장에 찬바람이 부는 것과 달리 경매시장은 여전히 열기가 뜨겁다. 집값 추가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한풀 꺾이면서 저렴한 매물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경매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2월 낙찰률 49.8%…2008년 8월 이래 최대
이날 입찰법정은 경매 시작시간인 10시가 채 되기 전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좌석 150석뿐 아니라 자리에 미처 앉지 못한 사람들이 서서 입찰표 배포를 기다렸다. 연령대도 다양했다. 50~60대 어르신들은 물론,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인 젊은 남성, 어린아이 손을 잡고 온 주부도 눈에 띄었다.
이는 일반 매매시장과는 다른 풍경이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4993건으로 전년 같은 달 대비 3546건이나 줄었다. 2년 전인 2014년 2월(7834건)과 비교해도 적은 숫자다. 경색된 일반 매매시장과 달리 경매시장은 활황세를 이어가고 있다. 매각물건은 유찰될 때마다 경매 시작가가 20%씩(서울 기준) 떨어지기 때문에 여러번 유찰된 물건에 수요자들이 더 몰리고 있다.
실제 이날 경매장에서는 두 번 유찰된 금천구 가산동의 아파트형 공장을 낙찰받은 이들이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기뻐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기자가 다가가 “만족할 만한 가격에 낙찰받았느냐”고 묻자 “시세로 5억 8000만원인 물건을 4억 500만원에 샀는데 어떻게 안 기쁠 수 있냐?”는 답이 돌아왔다.
아파트 수요자, 다세대·연립 등으로 몰려
눈길을 끄는 것은 높은 아파트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 하락세다. 경매시장으로 수요자들이 몰리는 데도 2월 아파트 낙찰가율은 89.9%로 1년 만에 처음으로 90%대 밑으로 내려갔다. 반면 연립·다세대 주택은 77.3%로 전년 수준을 유지했고, 단독·다가구 주택은 낙찰가율이 81.7%로 2012년 3월(82.8%)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창동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아파트 낙찰가율이 크게 오르면서 가격부담을 느낀 투자자와 실수요자들이 다세대 주택 등을 대안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며 “여기에 최근 개인인테리어나 리모델링 등을 통한 ‘나만의 주거시설 만들기’가 유행해 단독주택이나 낮은 가격의 연립주택 등 수요가 일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일 뿐 아파트도 경매 수요가 꾸준해 낙찰가율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연구위원은 “저금리로 대출에 따른 이자비용은 줄어든 반면 주식시장·일반부동산 매매시장이 부진해 마땅한 대안 투자처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앞으로 아파트를 포함한 경매 수요자는 꾸준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