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인공지능(AI) 학습용 데이터를 가공하는 ‘데이터 라벨러’인 A씨는 업계에 발을 디딘지 6년째인 올해 전직을 고민하고 있다. 2022년 11월 챗GPT 등장 이후 일감이 확연히 줄어들면서다. 정부가 주도한 ‘데이터 댐’ 사업에서조차 데이터 라벨러 수요가 급감하자 민간 부문의 일감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단가가 떨어졌다. A씨는 “2년 전엔 월 400만원은 벌었는데 지금은 50만~60만원 수준”이라며 “더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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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성시대를 맞았지만 AI 업계의 가장 ‘밑단’ 격인 데이터 라벨러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다. 데이터 라벨러는 AI 학습을 위해 데이터에 각주를 다는 역할(라벨링)을 한다. 정부는 지난 2020년 ‘한국판 뉴딜’의 첫 번째 과제로 데이터 댐 구축을 내걸며 데이터 라벨러를 대거 뽑았다. 그러나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는 챗GPT가 등장하면서 라벨러 수요가 급격히 줄었다.
실제로 공공 부문의 데이터 라벨러 일자리는 최근 1년간 ‘3분의 1토막’이 났다. 4일 이데일리 취재 결과 정부가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을 위해 창출한 데이터 라벨러 고용 인원은 2020년 4만165명, 2021년 4만2917명, 2022년 8만4257명으로 늘었으나 지난해엔 2만9509명으로 급감했다.
정부가 진행한 AI 데이터 학습 프로젝트도 2020년 92개(170종 데이터), 2021년 134개(190종), 2022년 213개(310종)로 늘다가 지난해 118개(146종)로 1년 만에 반토막 났다. 정부는 올해 70종의 데이터를 구축할 계획이라 프로젝트 수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가 교육비를 지원하는 ‘내일배움카드’에서도 데이터 라벨러 양성 과정은 지난해 12월 말까지만 모집하고 더이상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문제는 정부 주도로 양성한 데이터 라벨러들의 일자리가 빠르게 줄어들며 시장에 공급자(라벨러)만 늘어나자 민간 분야에서 ‘단가 후려치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한 민간 업체가 진행한 해상 자율주행 관련 프로젝트의 라벨링 단가는 10원이었다. 사진 1장에 들어 있는 데이터를 ‘박싱’(AI에 학습시키고자 하는 이미지를 추출하는 작업)하고 각주를 다는 데 10원을 줬다는 의미다. 자율주행과 의료 등 일부 분야는 안전과 관련이 깊어 여전히 챗GPT가 아닌 라벨러를 통해 데이터를 학습시킨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데이터 라벨러는 “2년 전 정부 주도 프로젝트였다면 건당 300원은 줬을 것”이라며 “최소 70~80원 수준은 돼야 최저임금만큼 벌 수 있는데 지금은 50원 이상 되는 일감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데이터 라벨러들의 고용 안전망도 나아지지 않았다. 정부는 2020년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4개 부처 장관과 경제부총리로 구성된 ‘한국판 뉴딜 당정 추진본부’를 꾸리고 고용부 장관에게 안전망 강화 역할을 부여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프로젝트조차 플랫폼을 통해 라벨러를 고용하는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라벨러들은 법적 지위가 근로자가 아닌 ‘노무 제공자’인 탓에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받아도 근로기준법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손혜원 조사관은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AI 전환을 성공적으로 견인하기 위해선 고용 취약 근로자 등 대상별 특성을 고려해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