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여론재판 조장…기업·국민 피해만 커질 것"

[전문가 5인 긴급진단]①
"설계 잘못" "기업 운영해봤나"…전문성·독립성 등 지적
일부 멤버 불참에 흐지부지 관측…"원래 불참" 반론도
  • 등록 2022-02-25 오전 5:00:00

    수정 2022-02-25 오후 2:50:13

[이데일리 이준기 김상윤 기자] “국민정서에 따른 여론 재판이 될 겁니다. 기업 주가는 땅에 떨어질 거고 국민연금 보유 주식 가치도 마찬가지겠죠. 재판에서 이겨도 이익은 기업에만 귀속되고 패소하면 소송비용은 국민연금 부담이 될 겁니다. 좌우간 그 손해는 모두 국민연금 가입자, 즉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거죠.”(재계 고위 관계자)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의 결정 권한을 종전 기금운용위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수탁위)로 대거 일임하는 지침 개정을 25일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이데일리가 24일 전문가 5인의 의견을 물은 결과, 재계를 중심으로 각계의 우려는 극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정 지침은 주주대표소송의 명칭을 ‘대표소송’으로 바꾸고 소 제기 결정 주체를 수탁위로 일원화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문제는 수탁위가 노동·시민단체의 입김에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 기금운용위는 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정부위원(각 부처 차관 5명)·사용자대표(경제단체 3명)·근로자대표(상급노조 3명)·지역가입자대표(시민단체 등 추천 6명)·전문가(2명)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수탁위는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등이 3명씩 추천해 짜인다. 지금도 정부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에 있는데, 수탁위 체제로 갈 경우 지역가입자 추천 인사 3명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돼 국민 정서 등 여론에 더 휘둘릴 수 있다는 게 이들 전문가의 지적이다.

지난달까지 수탁위에서 사용자 측 대표를 맡았던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은 “국민연금 지배구조의 설계가 잘못됐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독립성·중립성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기업을 운영한 것도 아니고, 실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를 수 있다”며 수탁위의 전문성을 문제 삼았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실장은 “굳이 수탁위에 권한을 주겠다면, 그에 걸맞은 책임도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주주대표소송은 회사 손해를 보전하라는 취지인 만큼 독립성·전문성 등을 이유로 주주대표소송 자체를 무력화하는 건 잘못”(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이라는 반론도 나왔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주주대표소송은 장기적 가치 상승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작 기업에 부정적 여론과 평판 악화 등 타격을 줄 것”이라며 “외국 파트너들이 자국 내 국부펀드에 제소당한 회사와 비즈니스를 하려 하겠는가”고 했다.

이번 기금위 회의에 기획재정부 1차관을 비롯해 일부 정부위원이 불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탁위 관련 안건이 부결되는 등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내달 9일 대선을 앞두고 무리하게 논란을 만드는 데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정부위원들이 기금위 회의에 거의 불참해온 만큼 큰 의미를 둘 이유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작년 10차례 회의에 기재부·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각각 3차례·2차례만 참석했다. 고용노동부·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제9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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