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밤을 지배한 여인 '등려군'

등려군
장제|564쪽|글항아리
  • 등록 2017-08-02 오전 5:04:00

    수정 2017-08-02 오전 5:04:00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중국의 낮은 덩샤오핑(등소평·鄧小平), 밤에는 덩리쥔(등려군·鄧麗君)이 지배한다.’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이 막 시작되던 중국에서 돌던 말이다. ‘첨밀밀’ ‘월량대표아적심’ 등 덩리쥔(1953~1995)의 노래는 당시 ‘정신오염’을 이유로 중국 당국에 의해 금지곡이 됐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당국의 눈을 피해 덩리쥔의 노래를 들었다. 시중에 유통된 불법 복제테이프만 2억개로 추정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젊은 시절, 덩리쥔의 노래를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고 고백할 만큼 광팬이었다.

책은 1970∼80년대 조국인 대만을 비롯해 홍콩·일본·동남아시아는 물론 중국에서까지 뜨거운 인기를 누리다 42세에 요절한 덩리쥔의 생애를 담았다. 덩리쥔의 친오빠가 회장을 맡은 등려군문교기금회가 2013년 탄생 6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공식 전기다. 한국에서 덩리쥔의 일대기를 다룬 책은 이번이 처음. 출판사 대표가 한 소설가의 페이스북에서 들은 그녀의 노래에 꽂힌 덕에 뒤늦게 국내서도 빛을 보게 됐다.

대만 언론인인 저자가 10년간 8개국을 돌며 덩리쥔의 가족과 친구, 음반 제작자 등 200여명을 인터뷰해 쓴 ‘등려군 세밀화’다. 가난한 집안에서 5남매 중 외동딸(넷째)로 태어난 덩리쥔은 여섯 살 때부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학업과 가수 활동을 병행할 수 없어 중학교를 중퇴했지만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했고 미국에서 대학도 다녔다. 사회문제도 외면하지 않았다. 1989년 톈안먼사태가 터지자 홍콩에서 벌어진 항의 시위에 참여했고, ‘슬퍼할 자유’라는 싱글앨범을 통해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가난한 마을에 상수도를 놓아주고 기부에 앞장서는 등 어려운 이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말레이시아 재벌 2세와 결혼날짜까지 잡았지만 파국을 맞았다. 영화배우 청룽(성룡)과도 좋은 감정을 나눴지만 연인으로 발전하진 못했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천식 발작으로 숨을 거둘 때는 혼자였다. 15살 연하의 연인이 잠시 외출한 사이 쓰러졌다.

여명(리밍)과 장만옥(장만위)의 주연영화 ‘첨밀밀’(1997)을 통해서만 알고 있던 그녀를 들춰보는 흥미가 있다. 다만 지나친 예찬은 불편하다. 성실한 조사를 바탕으로 썼다지만 가족의 승인을 받은 이른바 ‘검열된 전기’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비틀린 사실이라도 담아내야 하는 게 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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