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읽어주는 남자]인천 모자 살인범 성경책 몰수당한 사연

검찰 살인범인 동생 정모씨 범행계획 참고 서적 18권 몰수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 ‘모방범’ 외 성경도 포함돼
몰수도 형벌의 일종, 절도시 입었던 옷도 몰수대상 되기도
몰수 불가능할 때는 법원서 추징명령 내려
김무성 사위 흡입한 마약가치 상응하는 605만원 추징 당해
  • 등록 2015-10-18 오전 5:00:00

    수정 2015-10-18 오전 5:00:00

검찰은 인천 모자 살인사건의 범인인 동생이 소유하고 있던 책 18권이 범행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이유로 몰수했다. 몰수한 책 중에는 성경도 포함됐다.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동생이 엄마와 형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파묻은 이른바 ‘인천 모자 살인사건’. 2013년 여름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입니다. 1심은 피고인 정모(31)씨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서적 18권을 몰수했습니다.

그 중에는 일본인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쓴 추리소설 ‘모방범’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연쇄살인범을 다룬 이 책을 읽고 정씨가 범행을 계획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정씨의 사건처럼 범행에 쓰인 물건은 국가의 집행으로 몰수합니다. 범죄수익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원래 주인이 나타나면 돌려줍니다. 비슷한 듯 다른 몰수와 추징, 환부의 개념을 사례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몰수(沒收)는 사형이나 징역처럼 엄연한 형벌의 종류입니다. 몰수 대상은 △범죄에 제공했거나 제공하려 한 물건 △범죄로 생기거나, 이로써 취득한 물건입니다.

(형법 제48조) 정씨의 ‘모방범’은 전자에 해당합니다.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가 손에 들었던 흉기도, ‘대도’ 조세형이 담을 넘을 때 사용한 사다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법원은 성매매 업장이 들어선 건물과 토지를 몰수하는 판결을 내린 적도 있습니다.

범죄로 얻은 이익은 뇌물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그러나 돈은 쓰기도, 감추기도 쉬워서 몰수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그만큼의 가치(가액)를 ‘추징’(追徵)합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뇌물을 추징하는 이유는 몰수할 수 없어서입니다. 마약도 몰수합니다. 최근 논란이 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사위 마약사건’에서 법원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605만원을 추징했습니다. 이미 몸에 흡수된 마약을 몰수할 수 길이 없어서 대신 상응하는 금액을 추징하도록 한 것입니다.

앞서 두 전직 대통령처럼 재산을 빼돌려 추징을 무력화하는 것을 막을 장치도 있습니다.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몰수·추징 보전명령입니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이후 법원이 숨진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의 재산이 상속인에게 돌아가지 못하도록 1300억원 가량을 묶어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절도범이 훔친 물건은 범죄로 생긴 수익이지만 몰수하지 않고 ‘환부’(還付)합니다. A씨는 작년 2~8월 여성 속옷 87장을 훔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법원은 A씨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하고 속옷을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속옷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검찰은 관보에 주인을 찾는 공고를 냅니다. 관보를 보면, 십 원짜리 동전부터 담배, 고가의 명품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도난품이 주인을 기다립니다. 끝내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압수물은 국고로 환수해 매각합니다.(형사소송법 제132조)

몰수는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임모(55)씨는 상습야간절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습니다. 검찰은 임씨가 범행 당시 입은 옷과 운동화에 몰수를 구형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범죄행위와 직접관련이 없는 평상복에 불과하다며 기각했습니다. 피고인의 범행과 얽혀 있다고 해서 모두 몰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판결입니다.

그렇다면 정씨의 책을 몰수하는 게 옳을까요. ‘책이 사람을 범죄로 이끌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한 억측일 수 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은 그같은 인식을 보여줍니다. 항소심은 정씨에게 책을 돌려줬습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한 1심은 법리적 판단이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몰수한 책 18권 중에는 심지어 성경도 있었습니다. 설마 성경을 읽고 범행을 결심하거나 계획할 사람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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