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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는 일본인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쓴 추리소설 ‘모방범’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연쇄살인범을 다룬 이 책을 읽고 정씨가 범행을 계획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정씨의 사건처럼 범행에 쓰인 물건은 국가의 집행으로 몰수합니다. 범죄수익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원래 주인이 나타나면 돌려줍니다. 비슷한 듯 다른 몰수와 추징, 환부의 개념을 사례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몰수(沒收)는 사형이나 징역처럼 엄연한 형벌의 종류입니다. 몰수 대상은 △범죄에 제공했거나 제공하려 한 물건 △범죄로 생기거나, 이로써 취득한 물건입니다.
범죄로 얻은 이익은 뇌물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그러나 돈은 쓰기도, 감추기도 쉬워서 몰수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그만큼의 가치(가액)를 ‘추징’(追徵)합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뇌물을 추징하는 이유는 몰수할 수 없어서입니다. 마약도 몰수합니다. 최근 논란이 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사위 마약사건’에서 법원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605만원을 추징했습니다. 이미 몸에 흡수된 마약을 몰수할 수 길이 없어서 대신 상응하는 금액을 추징하도록 한 것입니다.
앞서 두 전직 대통령처럼 재산을 빼돌려 추징을 무력화하는 것을 막을 장치도 있습니다.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몰수·추징 보전명령입니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이후 법원이 숨진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의 재산이 상속인에게 돌아가지 못하도록 1300억원 가량을 묶어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몰수는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임모(55)씨는 상습야간절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습니다. 검찰은 임씨가 범행 당시 입은 옷과 운동화에 몰수를 구형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범죄행위와 직접관련이 없는 평상복에 불과하다며 기각했습니다. 피고인의 범행과 얽혀 있다고 해서 모두 몰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판결입니다.
그렇다면 정씨의 책을 몰수하는 게 옳을까요. ‘책이 사람을 범죄로 이끌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한 억측일 수 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은 그같은 인식을 보여줍니다. 항소심은 정씨에게 책을 돌려줬습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한 1심은 법리적 판단이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몰수한 책 18권 중에는 심지어 성경도 있었습니다. 설마 성경을 읽고 범행을 결심하거나 계획할 사람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