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아도 이 부회장은 부친 이건희 회장의 입원에 따른 1년여의 공석 기간 동안 무난히 ‘대행 체제’를 수행해 왔다. 계열사 합병 등 사업구조 개편과 한화그룹과의 화학·방산부문 빅딜 등의 폭넓은 행보로 이미 합격점을 얻었다는 평가다. ‘후계자’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룹 승계를 앞둔 이 부회장 앞에는 적잖은 과제가 함께 놓여 있다. 세계적인 그룹의 총수로 등극한다는 개인적인 영광보다는 기업을 과연 어떻게 이끌어갈 것이냐 하는 고뇌를 먼저 느껴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외 직원만 해도 50만명이 넘는 데다 매출액도 380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삼성그룹의 행보는 국가 경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1938년 ‘삼성상회’라는 간판을 걸고 기업을 키워왔으며 이건희 회장이 그 위에 ‘글로벌’이라는 탑을 쌓았다면 이 부회장에게는 다시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비전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수성(守成)’만으로는 곤란하다. ‘100년 기업’을 향해 성큼 걸어가야 한다.
이런 여건에서 미리부터 새로운 ‘복음(福音)의 메시지’를 요구하는 자체가 하나의 욕심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업을 살리고 국가경제의 버팀목으로 이어가려면 전체 조직을 새로운 분위기로 추슬러야 한다. 그 바탕을 이루는 굳건한 경영철학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노키아와 코닥의 몰락, 소니와 샤프의 퇴조에서 보듯이 기업 생태계의 부침은 미처 예측하지 못한 순식간에 초래되기 마련이다. 방향 설정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까닭이다. 그런 중에도 경쟁업체인 애플이나 구글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 여건이 어려워질수록 더 큰 꿈과 의지의 경영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래의 먹거리를 어떻게 창출하느냐 하는 과제가 이 부회장에게 맡겨져 있다. 부친이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10년 뒤에는 사라질지 모른다”며 위기감을 강조했던 배경을 되새겨야 한다.
나름대로 앞날을 내다보는 식견과 비전을 갖추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야만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서의 본격적인 도약도 기약할 수 있다. 앞으로 자리를 맡을 이재용 사령탑 체제 아래서 ‘삼성 스타일’이 어떻게 변해갈지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