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R&D 비용 수천억 썼지만 글로벌신약은 0개"

"R&D 지원 확대·범정부 차원의 평가시스템 구축 시급"
  • 등록 2014-12-10 오전 6:00:00

    수정 2014-12-10 오전 6:00:00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국내제약업체들의 신약 성과는 아직 초라한 수준이다. 지금까지 허가받은 국산신약 21개 제품 대부분 내수용인데다 3개 제품을 제외하고는 매출이 100억원에도 못 미친다. 지난 2011년 이후 4개의 줄기세포치료제가 승인받았지만 아직까지 글로벌 제품과는 거리가 멀다.

국산신약 생산실적 현황(단위: 억원, %, 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그나마 국내업체가 개발한 의약품 중 글로벌 시장에 가장 근접한 제품으로 보령제약(003850)의 고혈압약 ‘카나브’와 셀트리온(068270)의 류마티스관절염치료제 ‘램시마’가 꼽힌다.

국산신약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카나브’는 멕시코, 중국 등 총 16개국에서 약 2억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 세계 최초의 항체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는 유럽, 일본, 캐나다 등에 발매됐고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입성을 앞두고 있다.

보령제약은 카나브 개발에 총 282억원을 투입했는데 이중 정부 지원금은 32억원에 불과하다. 램시마는 연구개발에 2000억원 이상이 소요됐지만 정부로부터 단 1원도 지원받지 못했다. 정부 지원이 상업화로 이어진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얘기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 2013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제약산업과 연관이 깊은 생명과학과 보건의료 분야에 지원된 연구·개발(R&D)비용은 1조9324억원으로 2009년 1조3911억원에서 매년 증가추세다. 하지만 이중 직접적으로 의약품 개발에 투입된 비용은 2885억원에 그쳤다.
연도별 보건의료·생명과학 분야 정부 R&D 지원금(단위: 억원, 자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그나마 2011년 2994억원에서 2년새 3.8% 줄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신약 1개 품목 개발을 위해 10~15년 동안 1000억~1조원 가량이 소요된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혁신형제약기업에 선정된 제약사 41곳에 직접 지원한 R&D 비용은 324억원이다. 업체당 불과 8억원 가량 지원받은 셈이다.

R&D 지원 규모 확대와 함께 효율적인 투자 시스템 정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한 관계자는 “매년 수많은 과제들이 R&D 지원을 받지만 정작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고 성과에 대한 추적 시스템도 없다”면서 “비전문가들이 지원 과제를 선정하는 경우도 많아 과연 제대로 평가가 이뤄지는지도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성과 추적 시스템의 부재로 업계 일각에서는 “프리젠테이션만 잘해서 지원만 받아내면 끝”이라는 도덕적 해이도 만연한 실정이다. 정부 지원금을 놓고 산·학간의 갈등도 노출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한 대학교 연구진이 대웅제약을 상대로 “소유권이 없는 특허기술로 정부 지원금을 따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2011년 대웅제약은 A 대학으로부터 넘겨받은 물질로 정부 지원금을 18억원을 따내고 연구를 진행했는데, 독성이 나왔다는 이유로 연구를 중도포기했다. 하지만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물질의 개발자에게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으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지원을 결정한 산업자원통상부(당시 지식경제부)가 성과관리를 제대로 않고 있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업계에서는 범 정부 차원의 R&D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는 요구가 많다. 전문가들은 지난 2011년부터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등 3개부처가 공동으로 진행 중인 범부처 신약개발사업단을 주목하고 있다.

3개 부처는 오는 2020년까지 총 5300억원을 투자해 글로벌 시장 진출이 가능한 신약 10개 이상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직 사업 시행 초기단계이지만 사업단의 성과는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다. 지난 9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미래부에 제출한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에 대한 특정평가 자료를 보면, 올해 2월까지 총 40개 과제에 정부 출연금이 627억원 투입됐는데 기술이전 실적은 총 4개 과제 72억원에 불과하다. 기술이전 4건 중 2건(제넥신 46억원, SK바이오팜 18억원)은 사실상 자회사간 기술이전이어서 실제 효과는 8억원인 셈이다.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의 기술이전 실적(2014년 2월 기준, 자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부 부처가 손잡고 만들어도 R&D 지원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인데도, 지금은 각 부처간 아무런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중복투자도 많은 편이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은 사업목표를 지난해 ‘신약 10개 이상 개발’에서 ‘신약 10개 이상 기술이전’으로 수정하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정윤택 보건산업진흥원 제약산업지원실장은 “정부의 R&D 지원사업이 역사가 20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나쁘지 않은 성적표다”면서도 “앞으로는 글로벌 신약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중복투자를 방지할 수 있도록 범부처차원의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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