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회를 건설해 함께 어울려 공존하자는 접근법은 실패했다.”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2010년)
“영어를 못하거나 영국 사회에 통합될 의지가 없는 이민자들이 우리 사회에 불편과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영국에서의 다문화주의가 실패했다.” -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2011년)
“프랑스에서 다문화주의 정책은 실패했다.” -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2011년)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이민정책 실패를 자인했다. 노동력 부족 등의 이유로 이민을 적극 추진한 이들 나라들에서 최근 ‘반이민 정서’가 팽배한 상황이다. 이 같은 유럽의 동향이 국내 이민정책에 주는 시사점은 작지 않다. 전문가들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평가한다. 이민 제도적 측면에서는 성과가 있었지만 사회통합적 측면에서는 ‘불협화음’이 커 후유증이 컸기 때문이다.
‘이민의 나라’ 미국, 호주, 캐나다...이민정책도 각양각색
미국, 호주, 캐나다는 ‘이민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이민 문제와 해결 과정에서 여러 시사점을 준다. 미국은 가족 간의 결합을 통한 이민정책을 추진했었지만 클린턴 정부 때부터 정책기조에 변화를 줬다. 클린턴 정부는 이민 허용 기준을 미국이 필요한 고급인력 확보 차원으로 접근했다. 이는 미국 제조업 인건비의 상승, 농업 기피현상과 맞물린 결과였다. 이 결과 남미 이민자들이 물밀듯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반이민 정서가 높아지고 보수정부가 집권하자 이민을 제한하고 불법이민을 엄단하는 기조로 바뀌었다. 남미 이민자들은 ‘경제적 필요에 따라 이민을 추진해 놓고 대책 없이 추방만 하려 한다’며 반발했다. 이들은 이민에 다소 유화적인 오바마의 재선을 적극 지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층에서는 반이민 정서가 여전히 강해 오는 2016년 대선에서 이민문제가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호주는 ‘다문화주의’가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2011년 당시 호주 인구(2200만명) 중 45%가 이민 1~2세였다. 호주는 고급 기술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이민을 받아들여 이들에 대한 사회통합적 정책을 다수 시행해왔다. 그러나 백인계 불법 체류자보다 비백인계 난민에 대한 논란이 더 뜨거울 정도로 호주의 ‘백호주의’는 사회통합의 난제로 지목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시민사회 단체와도 이민 협의체를 구성해 민관 합동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 각각의 주정부에서 이민자들을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 주정부도 다각적인 이민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통합이민법, 이민청, 흑인 앵커 도입한 유럽
이민정책 성과와 관련해 국내에서는 독일 등 유럽 국가를 주목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단일 민족적 특성, 분단의 경험 등으로 우리와 유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이민정책이 추진됐다. 독일은 지난 1955년부터 해외에서 노동자를 받아들여 자국 노동시장의 빈자리를 메우려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인 당시에는 교통·통신의 발달로 대륙 간 이주가 급증했다.
이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뇌관이었지만 당시 정부는 ‘이들이 결국 자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 상당수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민자 2~3세대들은 독일 언어·문화에 익숙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뒤처져 소외됐다.
물론 유럽 주요 국가들이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 국가들은 이민자 증가에 따른 사회 변화에 발맞춰 사회·제도적 정비를 했다. 독일은 지난 1999년 국적법을 개정했고 2004년 통합이민법을 제정했다. 또 이민법 집행기관으로 연방이민·난민청을 설립해 제도적 기틀을 잡았다.
이민자 2세 테러 등 사회통합 실패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이들을 ‘외국인 노동력’으로만 보는 의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내부 갈등이 계속됐고 독일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에서는 ‘이민자 소외’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됐다. 급기야 프랑스에서는 지난 2005년 아프리카 출신의 이민자 청년들이 소요 사태를 일으켰고 같은 해 영국에서도 이민자 2세들이 런던 도심에서 폭탄 테러로 52명의 목숨을 앗아간 ‘7.7 테러’가 발생했다.
이민자들의 폭력 사태가 잇달아 벌어지자 유럽 자국민들의 여론은 급속하게 냉각됐다. 여기에 경제난까지 겹치자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기존의 다문화·포용 정책을 속속 접기 시작했다. 보수측 메르켈, 사르코지, 캐머런이 ‘다문화정책 실패’ 선언을 하고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이미 제도가 완비됐더라도 반감과 갈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
국내 171만 외국인 현실, 전략적 종합적 정책 필요
해외 이민선진국들이 사회통합 정책에 실패한 상황에서 우리는 반이민 정책으로 선회할지, 사회통합 정책을 강화할지 갈림길에 서 있다. 이민정책 전문가들은 국내 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171만 명(올해 8월 기준)을 넘는 상황에서 현명하고 전략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김창석 IOM이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프랑스, 독일, 영국의 사례는 장기적인 계획과 전략 없이 노동력 수입 차원에서만 이민을 받아들이면서 겪는 어려움을 보여준다”며 “외국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 인구구조 변화와 인력수요에 대한 중장기 연구, 통합이민법과 이민통합부서 등 종합적이고 중장기적인 이민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용호 법무부 이민통합과장은 “독일은 제도가 안정적으로 갖춰져 있었는데도 기존 국민들이 이민국가 전환에 여전히 거부감이 있는 상황”이라며 “독일 같은 제도가 없는 우리는 제도, 예산, 기금 같은 기반이 먼저 갖춰진 다음에 이민청이 설립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