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 3학년생인 구철희(25·가명)씨는 작년부터 준비했던 ‘행정고시’ 공부를 그만두기로 맘먹었다. 올해 1차 시험에 낙방한 뒤 내년을 기약하며 계획을 정비하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를 듣고서 바로 결단을 내렸다. 구씨는 “공무원이 안정적인 데다 사회적 지명도가 높아 도전하기로 했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공무원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며 “원래 나의 꿈인 방송국 프로듀서(PD)를 준비하려고 한다”고 했다.
젊은 층 사이에서 자신의 꿈을 되찾기 위한 취업 트렌드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과거와 같이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직장’,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일자리가 아닌 자아실현을 위한 직장에 재도전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진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신의 적성을 제대로 찾지 못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 자체를 국가적 낭비로 규정한다. 어릴 적부터 가족과 학교가 제대로 된 직업 가치관 교육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행복을 최적화할 길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정성’에서 ‘자아실현’으로 무게 이동
한국은 고도 성장기를 겪은 이후 직업을 선택할 때 ‘소득’이나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풍토가 강했다. 특히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이런 현상은 더 뚜렷해졌다. 과거 아버지 세대가 줄줄이 실직하는 모습을 본 아들 세대들이 공무원이나 대기업 등 안정적 성향의 직업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잡코리아 ‘좋은 일 연구소’가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남녀직장인 28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녀의 직업이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이길 희망한다(42.8%)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어 ‘공무원’이나 ‘공사’가 31.1%로 뒤를 이었고 ‘대기업’이라는 답변도 24.7%에 달했다. 반면 자녀가 선택한 직장은 어디라도 상관없다는 직장인은 24.4%에 그쳤다.
자식의 미래에 대한 부모들의 가치관은 그대로인데 반해 자식들은 스스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자아 만족’을 위해 직업을 선택하거나 경력을 버리고서라도 재취업하는 경향이 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억압된 사회적 분위기나 부모의 기대란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커진 탓이다.
어릴 적부터 제대로 된 ‘진로교육’ 선행돼야
전문가들은 한국의 진로교육이 아직 후진적이라고 평가한다. 힘들게 공부해 딴 자격증을 버리고 자아실현을 위해 새 직장을 찾는 젊은 층이 많아지는 것 자체가 국가적으로 손해라는 얘기다. 어릴 적부터 제대로 된 진로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아이들 교육에는 관심을 쏟지만, 정작 미래에 대한 대화는 중단된 것이다. 초등학생 이하 연령의 자녀를 둔 직장인 283명 중 20.5%는 자녀의 장래희망을 모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 5명 중 1명이 아이의 꿈을 모르고 키우는 셈이다.
김진 김진교육개발원 대표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진로를 잘못 정한 아이들은 대학에 가서도 자퇴를 하거나 편입을 반복하며 진로 방황은 계속되고 있다”며 “취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된 진로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병욱 충남대 사범대학 교수는 “부모는 아이의 진로교육에 관심을 두고 자녀가 직업을 선택할 때 제대로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부모부터 구체적인 정보를 얻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아이가 어떤 유형이고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잘할 수 있는지는 전문가도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소질과 적성이 잘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