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그냥 시장에 맡겨라

  • 등록 2014-01-06 오전 6:51:36

    수정 2014-01-06 오전 8:49:30

[이데일리 조철현 기자]우리나라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부동산 대책을 남발하는 곳도 지구촌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내내 ‘투기와의 전쟁’을 벌였고, 이명박 정부는 ‘투자 활성화’ 대책을 쏟아냈다. 박근혜 정부 역시 4·1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 대책과 7·24 후속조치, 8·28 전월세대책과 12·3 후속조치 등 굵직한 정책들을 잇따라 내놨다. 그만큼 주택시장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수십년간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이 있다. 바로 아파트 선(先)분양 제도다. 이 제도는 말 그대로 먼저 분양하고 주택을 짓는 것이다.

무릇 수명이 긴 제도에는 나름의 장점이 있게 마련이다. 선분양 역시 그렇다. 공급자(건설회사)는 공사 비용을 수요자(소비자)에게 미리 받아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초기 자금 마련 부담을 덜 수 있다. 수요자에게도 선분양은 매력적일 수 있다. 주택 구입 자금을 공정에 맞춰 나눠 내면 되기 때문에 입주 때 한꺼번에 목돈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주택업체의 신용으로 저리 또는 무이자 중도금 대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런 선분양 제도가 한때 시장과 정치권으로부터 거센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부동산시장 호황기였던 2000년대 중반 건설업계가 선분양을 통해 ‘있지도 않은’ 물건을 소비자들에게 비싸게 팔아 건설회사 배만 불린다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던 것이다. 급기야 노무현 정부는 2003년 발표한 5·23 부동산 대책을 통해 재건축아파트에 우선 후분양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아파트를 다 지은 뒤 파는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폭등하는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분양가는 오히려 급등했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비슷하게 책정되다보니 공사 기간 주변 집값이 뛰면 오히려 분양가가 더 비싸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2008년 후분양 폐기를 선언했다. 건설사의 분양가 폭리를 막기 위해 도입된 후분양 제도가 시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5년만에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랬던 후분양 제도가 최근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제2차 장기(2013~2022년) 주택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선분양 대신 보증 등 금융 지원이나 인센티브를 통해 후분양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사업승인을 받은 분양 전 또는 미분양 상태인 물량을 대상으로 후분양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후분양제 도입 명분이 노무현 정부때와는 다르다. 노무현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한 방안으로 후분양제를 택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경우 주택 공급 조절을 위한 수단으로 후분양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건설업체들이 한꺼번에 아파트 분양 물량을 쏟아내거나 기존에 사들인 부지의 금융 이자 부담이 커지자 분양성이 낮은데도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밀어내기식으로 분양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우려해 이 같은 후분양 유도책을 마련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분양 시점의 분산을 통해 집값 하락 진폭을 좀 줄여보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계는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아파트 분양시점으로 준공을 미루면 분양대금을 대신할 건설자금을 낮은 이율로 빌리더라도 금융비용에 따른 분양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또 준공 이후에도 분양에 실패할 경우 ‘악성 미분양’으로 남을 리스크도 떠안야한다.

선분양과 후분양 중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냥 시장에 맡기면 된다. 수요 공급의 법칙에 의해 특정 제도가 자리잡게 내버려두는 게 좋다는 얘기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 잘못된 시장 개입은 정책 실패로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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