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성 산업연구원 명예 펠로우] 지난 2022년 11월. 대화형 인공지능(AI) 챗봇 ChatGPT가 두 달 새 약 1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것을 시작으로 AI 기반 서비스가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왔다. AI는 놀라운 순기능을 가졌지만 딥페이크나 가짜 정보 제공과 같은 위험도 초래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찌감치 AI 규제 필요성을 인지해 2019년 AI 권고를 채택했으나 주목받지 못하다가 ChatGPT의 등장이 주요국의 AI 규제를 촉발하고 있다.
EU는 올 3월 세계 최초로 포괄적 AI법을 채택, 지난 8월 발효했다. 위험기반 방식을 채택해 높은 수준의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에 대해 최대 3500만유로(약 520억원)의 과징금도 부과한다. 국가에 따라 AI 규제 범위와 수준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이 지난해 10월 공표한 AI 행정명령과 비슷한 시기 중국의 생성형 AI 서비스관리 잠정시행방법은 신중한 분류등급 감독을 명시하되 AI 산업 발전은 저해하지 않도록 했다.
AI는 앞으로 디지털 무역에서도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가령, 환자 맞춤형 진료 서비스를 위한 AI 활용 원격 의료 서비스는 인터넷 등을 통해 국경을 넘어 제공되는 점에서 디지털 서비스무역의 일부이지만, AI 알고리즘을 통한 지능적 서비스라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디지털 무역협정을 보면 싱가포르 주도 디지털 경제 동반자협정(DEPA) 등에서 AI 기술 이용의 윤리적인 거버넌스 프레임워크 개발 중요성 인식을 규정한 것이 거의 전부다. 앞으로의 통상협상에선 상용화하고 있는 AI 규제 논의와 관련해 다양한 쟁점이 나올 수 있다.
첫째, 무역협정은 상품무역과 서비스무역을 구분하여 규율하지만 AI 시스템은 이분법적인 기존 무역규범의 규제가 적절한지 의문을 남긴다. AI 기술의 핵심인 AI 알고리즘은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에 내장되어 상품으로 판매될 수 있지만 이를 활용한 서비스 제공도 가능하다. AI 상품과 서비스가 결합해 제공되는 게 보통이다. AI 서비스 제공자와 제조업자를 나란히 규정한 EU AI법의 ‘하이브리드’ 규율 방식을 참고할 만하다.
둘째, OECD 권고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AI 관리를 위해 투명성 및 설명 가능성, 책임성 등의 원칙을 제시한다. EU AI법도 이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딥러닝과 같은 복잡한 AI 모델이 ‘설명 가능성’ 요건을 충족하는 건 쉽지 않다. 향후 통상협상에서 AI 관리 원칙 논의 시 위험 방지를 우선하는 입장과 혁신을 중시하는 입장 간의 절충이 관건이 될 것이다. 우리로서도 입장 정립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AI법안의 규제 수준 설정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 사항이다.
셋째, AI 서비스의 국경간 공급을 둘러싼 무역기술장벽(TBT)의 규율은 가장 시급한 과제다. AI 상품은 세계무역기구(WTO)의 TBT 협정이 적용될 수 있지만 AI 서비스는 아직 WTO 서비스무역일반협정의 국내 규제 조항이 전부다. 이 때문에 AI 서비스의 지속적인 성장과 안전한 사용을 보장할 국제표준화기구(ISO)를 통한 AI 국제표준 제정이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미국도 최근 AI 국제표준 개발에서 리더십 강화를 공표하면서 파트너와의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미·중간 기술패권 경쟁으로 인식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AI 기반 서비스의 국경 간 공급이 늘어날수록 AI 강국과 기본권 및 데이터 보호를 중시하는 국가 간 디지털 통상협상 과정에서의 샅바 싸움이 격렬해질 수 있다. 우리도 우리 AI 산업계의 입장을 반영한 대응이 중요하다. AI 시장은 AI 알고리즘과 같은 원천기술 분야 외에도 헬스케어와 교육 분야 등 다양한 산업응용 분야가 부상할 것이고 우리도 경쟁력을 가진 분야에서 기회를 찾아 나설 것이다. 우리 통상 당국도 시장개방 요구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AI 산업 내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국내 규제를 개선해 우리의 AI 기반 서비스의 저변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