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닥치는 대로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묻지마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3일 경기도 분당 서현역 일대에서 20대 남성이 차량 돌진과 무차별 칼부림으로 사망자 1명을 포함해 14명의 피해자를 낳은 데 이어 17일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공원 뒤 야산에서 30대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마구 때린 뒤 성폭행해 사망케 했다. 지난주에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 안에서 5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두르다 검거되는 등 불특정 대상을 향한 흉악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빈발하고 있다. 게다가 인터넷 공간이 살인을 예고하는 글로 뒤덮이는 사례도 최근 부쩍 늘었다.
국민은 불안하다. 지하철, 길거리, 산책길, 동네 뒷산 등 일상생활을 하는 공간 어디에서든 누구나 순식간에 흉악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치안강국이라는 자부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로 인해 국민의 삶이 크게 위축되고 있고, 경찰도 믿을 수 없으니 각자 알아서 자기 생명을 지켜야 한다며 떨고 있다. 후추 스프레이, 전기충격기와 같은 호신용 도구가 불티나게 팔리는 게 그 증거다.
경찰은 서현역 사건을 계기로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범죄예방에 나섰다. 매일 1만명 이상의 경찰관을 동원해 범죄발생 우려 지역에 대한 순찰과 감시를 강화했다. 공항 등 다중밀집 장소에 실탄이 장전된 무기를 든 경찰특공대를 투입하고, 일부 도심엔 장갑차까지 배치하기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묻지마 흉악범죄에 대해 총기와 테이저건을 포함한 정당한 물리력 사용을 공언했다. 법무부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도입하는 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 등 처벌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대응 조치들이 아직은 사후 땜질식의 단편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21년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인력의 상당수가 업무가 폭증한 수사 부서로 이동한 탓에 일선 치안을 담당하는 지구대와 파출소들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처벌 강화만으로는 묻지마 흉악범죄를 줄일 수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문가들은 묻지마 흉악범죄로 이어지는 사회적 불만 확산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예방에 중점을 둔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