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최근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유럽 스타트업 투자 매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초기부터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까지 투자하던 미국 투자사들이 당분간 관망세를 보일 것이란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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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미국 VC들은 올해 초부터 5월 말까지 유럽 스타트업에 총 113억달러(약 14조7250억원)를 투자했다.
유럽 스타트업에 투자한 글로벌 투자사 중 미국 비중은 전체의 19.3%를 기록했는데, 이는 피치북이 제시한 상반기 전망치(25%)와 지난해 연간 비중(22.6%)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피치북은 올 상반기 성장성이 높은 유럽 스타트업들이 줄줄이 투자 라운드를 마무리한 만큼, 유럽 벤처투자 속 미국 비중이 25%를 가뿐이 넘길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투자사들은 2016년부터 유럽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늘려왔다. 해외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용이하고, 미국 대비 유럽 스타트업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상대적으로 낮아 투자 매력도가 높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흐름이 꺾이기 시작한 것은 올해 3월부터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해외 보다 국내 알짜배기 기업에 집중하는 투자사들이 늘었다. ‘스타트업 은행’으로도 불리던 SVB 자산 규모는 2022년 말 기준 약 276조5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경기 변화에 따른 은행 측의 리스크 관리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업계 내 불안감이 고조됐고, 결국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발생하며 파산했다.
피치북은 “미국 투자사들의 이러한 결정은 싸늘한 현재의 시장 분위기와 출자자(LP)들의 안정적 투자 기조를 모두 고려한 결과”라며 “안전지대를 벗어난 해외 벤처보다는 자국 시장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파운드 및 유로화 강세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유럽 스타트업들은 미국 대비 낮은 밸류에이션으로 미국 투자사들 사이에서 러브콜을 받아왔으나, 현재의 환율은 미국 투자자들이 유럽에 투자하기에 유리하지 못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규모 줄었지만 ‘성장성 뚜렷한 곳’ 집중 투자
엔팔은 ‘임대용 태양광 시스템’이라는 사업모델을 토대로 약 3만명의 고객을 보유한 에너지 기업이다. 누구나 태양광 에너지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당 라운드에는 미국 웨스틀리그룹과 미국 기후 투자 전문 액티베이트 캐피털 등이 함께 참여했다.
덴마크 헤맙테라퓨틱스가 진행한 시리즈B 라운드(약 1760억원 규모)도 유럽 투자사보다 미국 투자사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해당 라운드에는 총 9곳의 글로벌 투자사가 참여했는데, 이 중 미국 기반 투자사는 엑세스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아보로벤처스, 딥트랙캐피털, 인버스 등 여섯 곳인 것으로 집계됐다.
헤맙테라퓨틱스는 미충족 수요가 높은 출혈질환 관련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으로, 유전성 혈액 응고 질환인 폰빌레브란트병과 글란츠만혈소판기능저하증에 대한 예방용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유럽 스타트업에 대한 미국발 투자는 당분간 주춤할 뿐,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갈 것이란 시각도 있다. 피치북은 “미국 VC들이 유럽 벤처투자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포트폴리오 다각화”라며 “현재는 시장 분위기와 고환율로 주춤하고 있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해외 벤처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