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안하면 남양처럼 외면받아…그중 G가 제일 중요"

[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①
비도덕적 행위땐 불매운동 부메랑
의사결정 체계인 G부터 잘 작동해야
E·S 투자 결정 순조롭게 이뤄져
美처럼 연금 백만장자 나오려면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 빨리 도입해야
  • 등록 2021-11-09 오전 5:30:00

    수정 2021-11-09 오전 5:30:00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남양유업 사태 때 산모들이 맘카페에서 남양 분유를 쓰는 조리원을 가지 말자고 보이콧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젊은 직원들과 점심 먹으러 나갔는데 백미당은 남양유업에서 하는 곳이니 가지 말자고도 하더군요. 특히 소비재 쪽에서는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를 따르지 않으면 이제 살아남을 수 없게 된 거죠”

지난주 서울 여의도 금투센터에서 만난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인터뷰 상당시간을 ESG 설명에 할애했다. ESG는 이제 시대적 요구이고 이에 부응하지 못하면 자본시장에서도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원장은 연세대 경영대 교수로 지난 2019년부터 2년 반 동안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을 맡아 ESG 전도사 영ㄱ할을 했다. 지난 9월말 자본시장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지 이제 한 달여, 신 원장은 자본시장에서 ESG 투자성과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ESG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등을 고민하고 있다.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금투센터에서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 투자자쪽에서 먼저 요구한 ESG…비재무적 요인이 실적에 영향


신 원장이 정의하는 ESG는 기업이 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 경영, 그리고 투자다. 그동안에는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에 기재되는 숫자와 미래 전망에 근거해 투자했다면 이제는 비재무적인 요인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해 투자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신 원장은 “투자자들이 예전에는 사회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막 해도 이익이 나면 그냥 넘어갔고,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는 기업에 대해서도 비용을 아꼈으니 됐다고 했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사실 ESG를 한다는 것은 결국 비용이 더 소요된다는 뜻이기 때문에 투자수익과는 상치된다는 편견도 있다. 그래서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ESG 투자에 적극 나서기 어렵지 않겠냐는 인식도 있었다.

하지만 신 원장은 오히려 투자자쪽에서 먼저 ESG를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그는 “유니버셜 인베스터, 그리니까 국부펀드나 글로벌 기관투자자와 같이 전 세계에 투자하는 곳은 지구온난화가 이뤄지면 전세계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고 전세계 자산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이를 고스란히 투자손실로 떠안아야 한다”며 “투자자들이 ESG의 이해당사자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비재무적 성과가 기업 실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남양유업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남양유업은 제품이나 기술력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비도덕적인 행위로 불매운동이 일어나면서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경험을 했다.

ESG 투자수요가 늘면서 돈이 몰리니 자연스럽게 자산가치가 올라가고 투자성과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신 원장은 “과연 이같은 ESG 투자성과가 유지될 수 있는가는 두고 봐야겠지만 투자쪽에서 학습커브(learning curve)가 빨라지고 있어서 안정적인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해외의 경우 ESG가 투자가 수익률 자체를 올리는 면도 있지만 변동성을 낮추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들의 ESG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ESG 개념이 명확지 않은데다 기준도 평가기관마다 제각각이어서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지적도 높다. 신 원장은 “대기업조차도 이제 ESG를 이해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며 “ESG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만 해도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ESG 중에서도 지배구조를 의미하는 ‘G’를 최상위 개념으로 꼽았다. 신 원장은 “G는 기업의 의사결정 체계인데 G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E(환경)와 S(사회책임)가 잘 될 수가 없다”며 “의사결정이 제대로 되려면 구성원과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 손실이 나더라도 당장 E와 S에 투자해야 하는지, 직원과 협력사에 더 나은 대우를 해줘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과정이 순조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ESG에서도 양극화가 이뤄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지난해 평가한 국내 기업들 ESG 등급은 전반적으로 올라갔지만 못하는 기업들은 여전히 뒤떨어져 있다는 것. 신 원장은 “국내에서 ESG가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제도 바꿔야 ‘연금 백만장자’ 가능

신 원장은 ESG 확산 외에 3년 임기 동안 해야 할 또 다른 주요 과제로 정책적 제언을 꼽았다. 대선을 치르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 자본시장 관련 아젠다를 설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선 시급한 정책 과제로 사전지정운용제(디폴트옵션) 도입 등 퇴직연금 제도개선을 꼽았다. 디폴트옵션은 DC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금융사가 사전에 결정된 운용 방법으로 투자 상품에 알아서 투자, 운용하는 제도다. 원리금 보장상품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탓에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이 2%에도 못 미치자 디폴트옵션 도입 법안이 추진돼 왔지만, 수년째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신 원장은 “고령화 사회에 퇴직연금은 노후보장을 위한 몇 안되는 수단인데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안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미 해외에서는 퇴직연금, 특히 디폴트 옵션이나 타깃 데이트 펀드(TDF)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100만달러 이상의 퇴직연금을 가지고 은퇴하는 ‘연금 백만장자’가 26만명을 넘어섰다.

이어 “개인들이 개별적으로 투자해서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은 데이터로도 입증된다”며 “정책적으로 개인 투자를 퇴직연금 등으로 전환해 모험자본을 공급하고 그에 따른 수익이 개인에게 환원돼야 하는데 정치권에서 너무 못 따라가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증권거래세를 줄이거나 폐지하고 궁극적으로는 전체 자산에 대한 손익통산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거래세를 폐지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단타만 성행할 것이란 우려에 신 원장은 “거래세가 낮아지면 모든 시장참가자가 혜택을 받는 건데 특히 거래를 더 자주 하는 개인투자자들이 입을 혜택이 클 것”이라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 손익통산 구조가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법개정을 통해 국내외 주식에 대한 손익통산이 가능해졌지만, 전체 투자자산에 대해 손실과 이익을 합해 이익이 난 부분에 대해서만 과세해야 장기투자와 분산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 원장은 “자본시장 자체가 성장할 여지가 크고 경제에 기여하는 측면도 크다”며 “전 국민을 투자자로 만들려면 제도 개선을 통해 안정적이면서도 장기적인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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