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 흘렀어도..여전히 유효한 '사실주의 연극' 대표작

[리뷰]연극 '만선'
인간의 욕망· 좌절 적나라하게 보여줘
파도·비바람 실감 구현한 무대 인상적
  • 등록 2021-09-16 오전 5:30:01

    수정 2021-09-16 오전 5:30:01

연극 ‘만선’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고기잡이가 인생의 전부인 곰치. 가난한 뱃사내로 바다에 모든 것을 걸고 평생을 산 그에게 만선은 꿈이자 살아가는 이유다. 하지만 선주의 배를 빌어 살아가는 그는 바다에 나갈수록 빚만 쌓인다. 몇 십년 만에 칠산바다에 허벅다리만한 부서(보구치) 떼가 들어오자, 곰치는 빚 청산을 위해 폭풍우를 무릅쓰고 배를 띄운다. 그러나 거친 파도에 빌린 배는 부서지고 아들마저 잃는다. 이 일로 아내는 실성하고, 빚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시집갈 처지에 놓인 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960년대 우리나라 사실주의 연극을 대표하는 고(故) 천승세 작가의 ‘만선’이 다시 무대에 오르고 있다. 1964년 국립극장 희곡 현상공모 당선작으로, 불합리한 지배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서민들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내 호평받은 작품이다. 문학 교과서에도 수록됐던, 환갑이 다 된 이 작품이 지금도 깊은 울림을 주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삶의 군상이 크게 다를 게 없어서다. 여전히 가진 자의 갑질은 횡행하고, 사회는 불공정하며, 자본주의 피라미드 최끝단 서민들의 삶은 고통스럽다. 이들을 살게 하는 동력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저 멀리 ‘만선의 꿈’ 아닐까.

연극 ‘만선’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연극은 한 뱃사내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좌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사진 바닥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배우들의 모습에선 하루하루 허우적대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몸부림이 엿보인다. 곰치는 낡은 신념과 고집으로 가정을 파멸로 이끌지만, 그가 거대한 자연에 맞서 싸우는 모습은 현실에 타협해 사는 우리들에게 카타르시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로하는 작품이다.

윤색을 맡은 작가 윤미현이 적극적인 여성상을 덧대 시대적 감수성을 담았다. 파도와 비바람을 실감나게 구현한 이태섭의 무대도 무척 인상적이다. 김명수, 정경순, 김재건, 정상철, 이상홍, 김명기, 송석근, 김예림 등이 출연한다. 공연은 오는 19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추천)

※별점=★★★★★(5개 만점, 별 갯수가 많을 수록 추천 공연)

연극 ‘만선’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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