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공시가격은 32% 뛰었는데 우리집은 왜 59% 뛰어?”

[서울 단독주택 고무줄 공시가]②
국토부 "주민 반발 우려한 지자체 …감사 착수"
지자체 "정부 기준 따랐다, 반발 커지자 책임 떠넘겨"
전문가 "구체 산정 근거 미공개가 혼란 불러"
  • 등록 2019-04-04 오전 4:00:01

    수정 2019-04-04 오전 10:49:03

[이데일리 정병묵 김기덕 기자] “옆집은 공시가격이 32% 올랐는데 우리집은 59% 뛰었다고?”

용산구 한남동 소재 한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지난해 6억7800만원에서 올해 10억800만원으로 59%나 뛰었다. 그러나 근처 개별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은 지난해 4억9100만원에서 올해 6억4800만원으로 32%가량 올랐다. 두 집 간 상승률 격차는 무려 27%포인트다.

정부가 산정한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과 지자체가 산정 중인 개별 단독주택 공시가격 격차가 크게 벌어져 주택 보유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자체가 잘못 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강경 대응한다는 입장이고, 지자체는 적법한 절차에 맞춰 산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을 부과할 때 정부가 기준으로 삼는 공시가격이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하면서 조세 정의가 훼손되고 애먼 주택 보유자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단독·다가구주택이 밀집해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 모습. 사진=연합뉴스
같은 동네인데 공시가 상승률 격차 20%P

이데일리가 서울 25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연초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과 각 지방자치단체가 산정한 개별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이 최대 7% 이상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용산구의 경우 올해 개별 단독주택 공시가 상승률이 27.75%로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 상승률(35.40%)과 무려 7.65%포인트나 차이났다. 이어 마포구(6.57%포인트), 강남구(6.11%포인트), 성동구(5.59%포인트), 중구(5.38%포인트) 등이 5%포인트 이상 격차가 났으며, 서대문구(3.62%), 동작구(3.52%), 종로구(3.01%) 등도 격차가 꽤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고가 주택이 몰린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과 강남구 등의 격차가 컸다.

전국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나눠 매긴다. 매년 1월 국토부는 산하 기관인 한국감정원을 통해 22만가구의 표준주택 가격을 샘플로 정하고, 지자체는 이를 바탕으로 나머지 개별주택을 산정한다. 지자체는 4일까지 열람 및 의견접수를 받고 한국감정원의 검증을 거쳐 오는 17일까지 의견제출인에게 개별 통지 후 이달 30일 최종 결정·공시한다.

실제 사례를 보면 올해 표준 및 개별 단독주택 간 가격 상승률 격차가 큰 곳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구에서도 삼성동 소재 한 개별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이 지난해 43억8000만원에서 올해 61억원으로 39.3% 올랐는데, 바로 옆에 들어선 표준 단독주택의 상승률(51.1%)에는 못 미쳤다.

국토부는 각 지자체가 세 부담과 관련 주민 민원 등을 우려해 개별주택 공시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설정했다며 감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논란이 일자 “즉시 점검에 착수해 명백한 오류를 지자체에 시정 요구하고 산정 및 검증 과정 등에 문제가 있는지 감사를 착수하겠다”며 “가격 결정과정에 부적절한 점이 발견될 경우 30일 최종 공시 전까지 시정되도록 지자체에 요구하겠다”고 설명했다.

각 지자체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국토부가 ‘깜깜이’로 진행하는 표준주택 공시가격 산정 방식을 문제삼고 나섰다. 정부가 공시가 현실화율(시세반영률)을 내세워 입맛대로 표준주택 공시가격을 산정해 개별 주택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용산구 세무과 관계자는 “지난달 15일부터 개별주택 공시가격에 대한 열람이 시작되면서 단독주택 소유자들이 민원이 폭주하면서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며 “어떤 표준주택과 연계하느냐에 따라 개별주택 가격 차이가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자체 관계자는 “국토부가 이미 산정한 표준주택 공시가와 산정 기준을 가지고 진행한 데다 이미 감정원 검증까지 받았다”며 “구체적 표준주택 공시가 산정 기준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국토부가 세 부담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공시가 산정 방식부터 문제

전문가들은 같은 입지라 할지라도 주택 특성이나 해당 구역 토지, 용도 등에 따라 공시가격이 달라질 순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간 산정 과정에서 엇박자가 나 화를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주택 공시가격은 조사·산정 방식에 대한 근거가 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 방식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최종 가격을 산정하는 공무원의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표준주택을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납세자 입장에서는 ‘이 집은 세금을 높여도 되는 주택’이라는 불공정한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장 피해가 큰 것은 세금 납세자다. 국토부가 개별 단독주택 공시가격이 낮게 매겨진 곳의 경우 시정조치 등 강경 대응을 시사한 만큼, 주택 보유자들 중 최종 확정 공시가격이 이미 열람했던 가격보다 대폭 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어 지자체가 정부의 시정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자체들이 표준주택 가운데 상승률이 낮은 것을 기준으로 개별공시가를 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주관적 판단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국토부가 지자체를 통제할 수단은 현행 법상엔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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