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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효자나 불효자 없다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은 스웨덴·멕시코와의 1·2차전에서 비디오판독시스템(Video Assistant Referees·이하 VAR)의 희생양이 됐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된 VAR은 심판의 권한에 따라 작동되면서 강팀에게 유리하게 사용됐다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 공교롭게 VAR은 독일전 승리의 실마리가 됐다. 독일 토니 크로스가 문전에서 내준 볼이 골대 오른쪽 앞에 있던 김영권 앞에 정확히 떨어졌다. 김영권은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를 앞에 두고 곧바로 슈팅으로 골인에 성공했다. 부심이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며 노골로 선언됐지만 VAR로 다행히 판정이 번복돼 골을 인정받았다. 한국축구 대표팀은 여세를 몰아 손흥민의 추가골로 독일 16강행의 덜미를 잡았다.
김영권은 1·2차전에서 잇단 수비 실책으로 팬들의 뭇매를 맞다가 독일을 무너뜨린 결승골로 환호를 받는 주인공이 됐다. 김영권은 4년 전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이어 이번 월드컵에서도 불안한 수비와 지난해 실언으로 축구 팬들의 비난을 산 바 있다. 김영권은 지난해 8월 이란과의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0-0으로 비긴 뒤 “관중의 함성이 크다 보니 선수들이 소통하기 힘들었다”는 발언으로 거센 질타를 받기도 했다. 김영권은 독일전 후 “4년 동안 너무 힘들었는데, 러시아월드컵을 통해 조금이나마 나아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눈물을 보였다. 마치 영원한 효자도, 영원한 불효자도 없다는 세상 이치를 방증한 셈이다.
신태용 월드컵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구원투수’로 불렸다. 월드컵 출전을 1년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독이 든 성배’를 스스로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11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당시 신 감독은 “축구의 위기가 온 것은 사실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면서 “위기보다는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시아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전력”이라고 강조했다.
신 감독은 조별리그 스웨덴과 첫 경기를 앞두고 상대를 헷갈리게 만들겠다며 ‘트릭’이라는 단어를 썼다. 김신욱의 고공 공격이 먹혀들지 않고 패스 능력마저 난조를 보이면서 ‘트릭’ 발언은 오히려 웃음거리가 됐다. 멕시코 전 역시 아쉬운 패배를 맞으면서 신 감독과 선수 간의 호흡도 의심을 받았다. 축구국가 대표 출신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운동장 안에서는 선수들끼리 활발하게 얘기를 해야 한다”라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주문했다. 다행히 독일전에서 수비의 허점으로 보였던 장현수의 미드필더 기용, 공격수 손흥민의 전방위 활용 등으로 감독과 선수의 호흡이 맞아떨어졌다.
△축구공은 둥글다..포기하지 않는 열정
각국이 자존심을 놓고 벌이는 월드컵은 마지막 경기까지 이변의 연속이다. 일본 산케이스포츠는 “독일이 한국에 지면서 베를린에서는 ‘자신감이 보이지 않았다’, ‘투쟁심이 없었고 당연한 결과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FAFA 랭킹 57위인 한국이 랭킹 1위 독일을 꺾으면서 ‘축구공은 둥글다’는 의미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무명이었던 한국국가대표팀의 골키퍼 조현우가 멋진 수비로 스타가 됐다. 국가대표팀이 1·2차전 패배 이후 온갖 비난을 받다 3차전 독일전 승리만으로 칭찬을 받은 것도 반전 아닌 반전이다.
스포츠방송 ESPN이 자체 알고리즘 ‘사커 파워 인덱스’로 계산한 대한민국의 승률은 5%였다. 팬들은 한국 축구가 16강을 오르지 못하더라도 꺾이지 않는 투지와 꺼지지 않는 열정을 경기장에서 보여주길 바랐다. 국가대표팀은 독일전 당시 16강의 실낱같은 희망의 끝을 잡고 공을 따라, 선수를 따라, 공간을 따라 날으고 뛰었다. 추가 시간 9분 여 동안 2골을 몰아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와 열정을 보여줬다. 이낙연 국무총리를 독일전 승리를 놓고 “또 현실이 상상을 앞섰다”는 말로 한국 경제·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