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성인용품 구매 상담을 돕는 플레져랩 직원들은 고객들로부터 다양한 성적 고민과 질문을 듣는다. 전화로 상담을 청해오는 것은 보통 중년의 여성들인데, 목소리에서부터 망설임과 설렘이 묻어난다. 오랫동안 섹스에 대해 함구해온 이들은 친구나 파트너에게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는다. 완벽한 타인인 우리에게 속마음을 내비치는 게 되려 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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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상담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사람들은 섹스에 대해 말하기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억누르는 게 예의 바르고 정숙한 것이라고 학습해왔기에 더더욱 쌓인 것이 많다. 섹스토이 구매를 계기로 연락해온 이들은 그간 회피하기만 했던 자신의 욕구를 직면하고,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
넓은 강의실에 모여 원을 그리고 앉은 이들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얼마나 섹스를 좋아하는 지에 대해서, 누군가는 성폭력 피해 경험에 대해서, 또 다른 이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 역시 처음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던 것을 더듬더듬 늘어놓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서로를 북돋워 주는 편안한 자리였기에 무사히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이후 연극을 준비하는 동료들과 성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하며 움츠러들었던 태도가 당당해지는 걸 느꼈고, 섹스에 대해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곽 사장과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우리가 친구들 사이에서 섹스토이에 대해 말하는 유일한 또래였기 때문이다. 여자가 자신의 욕망을 탐험할 공간이 없음을 한탄하던 우리는 결국 함께 플레져랩을 창업했고, 이 공간을 단순히 섹스토이를 사고파는 매장이 아니라 여성들이 안심하고 섹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가꾸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작년 추석, 플레져랩 매장에서 영화 상영회와 섹스 토크를 겸한 ‘오르가즈믹 무비 나잇’을 열었다. 인류 최초의 바이브레이터 발명기를 그린 영화 ‘히스테리아’를 같이 관람하고, 우리를 제외한 열 몇 명의 여성과 함께 둘러앉아 섹스 취향부터 성 건강까지 다채로운 소재로 이야기를 나눴다. 각양각색의 경험을 가진 여성들이 마음을 열고 의견을 들려준 덕분에 매우 즐겁고 유쾌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용기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누군가에게 털어놓았을 때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좌절하지 말고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길 바란다. 문제가 있다면 발화를 통해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인지를 하게 되고, 호기심이 있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으론 당신 역시 좋은 ‘들어주는 이’가 되어야 한다. 편견은 접어두고, 상대가 마음을 드러낼 수 있도록 신뢰감을 주자. 만약 당산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문제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청해도 좋다. 섹스에 대한 대화를 통해 새로운 자신의 모습과 욕망을 발견하는 한편, 지지가 필요한 이에게 아군이 되어주자. 장담컨대 당신에게 해방감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