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눈]노벨상을 대하는 중국의 두 얼굴

  • 등록 2015-10-14 오전 4:01:01

    수정 2015-10-14 오전 4:01:01

[베이징= 이데일리 김대웅 특파원] “노벨상 수상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 줄 미처 몰랐어요. 그런데 중국인 노벨상 수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하던데….”

중국 현지 언론들이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투유유(85)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에 대해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일반 국민들은 다소 냉담한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중국 언론들은 노벨상에 대해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벨상 의미를 폄훼하거나 노벨위원회와 갈등 구도를 형성해 왔다고 보는 쪽이 맞다.

투 교수는 이번에 중국인으로서 처음으로 과학부문 노벨상을 받았지만 노벨상 전체로 놓고 보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인권운동가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최초였다. 그보다 앞서 2000년 중국계 작가 가오싱젠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만 당시 그의 국적은 프랑스였다. 이 외에도 중국을 떠난 화교 출신들이 수차례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바 있다.

이들에 대한 중국 정부와 언론 반응은 싸늘했다.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때마다 반체제 인사 등이 수상자로 결정돼 중국이 만족할 만한 수상자가 없었던 탓이다. 가오싱젠 역시 프랑스로 망명한 반체제 성향 작가로 중국 당국은 그의 작품을 금서 조치했다. 중국 국적의 첫 노벨상 수상자 류샤오보의 수상 소식 역시 중국 관영 매체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가 민주화를 요구하다 투옥됐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오히려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서구진영의 내정 간섭이라면서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중국과 노벨위원회는 다소 껄끄러운 관계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노벨상에 무관심하던 중국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투 교수 수상 소식에 언론들이 앞다퉈 영웅 만들기에 나서는가 하면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 역시 국경절 연휴 중 급히 축전을 보내는 등 대륙 전체가 중국의 굴기를 상징하는 경사로 받아들이려는 분위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투 교수가 중국 국적자로는 처음으로 과학부문 노벨상을 받았다”며 신문 1면 톱뉴스로 수상 소식을 알렸고 저장일보도 1면 톱뉴스를 통해 “중국 내 모든 과학자들에게 영광스런 일”이라며 비중있게 다뤘다. 중국중앙(CC)TV 역시 메인 뉴스이자 특집 방송으로 수상 소식을 전했다.

투 교수의 노벨상 수상은 중국인들에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는 개사철쑥과 개똥쑥 등에서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데 효과가 큰 성분을 추출한 공로를 인정받으며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가 됐다. 특히 중(中)의학을 바탕으로 한 연구 성과로 노벨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중국의 자긍심을 고취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다소 낯뜨거운 측면도 있다. 그동안 자신들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가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태도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노벨위원회와 대립해 오며 노벨상 자체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보이던 당국이 하루아침에 이를 체제 강화 수단으로 삼는 모습은 생소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언론들이 앞다퉈 국가적 경사로 치켜세우는 것과 달리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같이 극단적인 태도 변화는 중국의 언론 통제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주요 언론의 대부분이 관영인 중국은 체제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5년 전 노벨상 의미를 깎아내리던 태도에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이번엔 입을 모아 영광스러운 일로 떠받들고 있는 것은 중국 언론 환경이 체제 순응적이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대하는 중국의 이중적인 모습은 권력 비위를 맞추는 언론 태도와 맞물려 대국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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