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을 때마다 덕담이 오가기 마련이지만, 과연 요즘도 이러한 인사치레가 통용되는지 모르겠다. “돈을 많이 벌라”고 말하면서도 어딘지 공허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해서다. 아무리 부자가 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허망한 꿈이라면 웃음의 악수 속에서도 대화 분위기는 오히려 썰렁해질 뿐이다. 그만큼 부자의 꿈이 멀어진 탓이다.
월급쟁이 신세로는 치솟는 전셋값과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 대기에도 빠듯한 형편이다. 발버둥 쳐봤자 ‘땅콩 껍질’을 벗어나기 벅찬 처지에서 부자 되라는 인사말은 눈치없는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 자칫 비윗장만 긁어댈 것이라는 얘기다.
부자 덕담만이 아니다. 처녀 총각에 대해 “올해는 국수를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결혼 의사를 떠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생에서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일찌감치 바뀐 상태다. 덕담이랍시고 “신랑감 소개해 주겠으니 맞선이나 보라”고 추근대다간 영락없이 성희롱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에게 취직을 당부하는 덕담은 또 어떠할까. 어지간히 노력하면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던 시절에는 격려 차원에서도 필요한 덕담이었다. 지금은 발바닥이 아프게 이력서를 돌리고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거기에 대고 취직 운운하다가는 정초부터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잘되라고 건네는 말인데도 정작 본인은 폐부를 찌르는 송곳날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위아래 친척들이 모처럼 둘러앉아 떡국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할 말, 못할 말을 가려야 하는 세태에 이른 것이다. 결혼식조차 주례가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적잖은 것을 보면 사회적으로 덕담의 효능을 일찌감치 믿지 않게 됐다는 증거다.
금연(禁煙) 당부도 연례적인 덕담이지만 올해처럼 담뱃값이 한몫에 오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금연을 강요받는 상황에서는 야속하게 비쳐질 수 있다. 담뱃값이 오르기 전이라도 맘껏 피워보겠다고 수시로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연기를 뿜어대던 심사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세상이 팍팍해진 결과다. 인사말도 상대방의 눈치를 봐가며 건네야 할 만큼 여유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언젠가는 “새해에는 복권에나 당첨되라”는 소리가 허물없는 덕담으로 자리잡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마디 덕담은 아직 눈치를 보지 않고도 가능하다. 필자도 이 기회에 겸하여 인사를 드린다. “독자 여러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