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방한] 낮은 자 위한 사랑의 여정 '72시간'

작은 국산차 쏘울·KTX 타고 이동
시민 환호 쏟아지자 차에서 내려 30미터 걷기도
지나가다 아이들 보이면 차 멈춰세우고 입맞춤
퍼레이드 중 세월호 유족 손 잡고 위로
꽃동네 아이들 '손하트'에 '손하트'로 화답
  • 등록 2014-08-18 오전 6:41:00

    수정 2014-08-18 오전 6:41:00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시복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천주교 신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장, 아기 이마에 입맞추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첫 아시아 방문국으로 한국을 택한 프란치스코(79) 교황의 행보는 소탈하고 격이 없었다. 의전 차량으로 가장 작은 국산차 쏘울을 타고 이동한 데 이어 대전·충청지역으로 이동할 땐 헬기가 아닌 KTX를 이용하는 등 그의 소박한 실천은 가는 곳마다 화제가 됐다. ‘가난한 이의 벗’이자 ‘낮은 자’를 위한 사랑의 여정을 이어간 교황의 모습은 비단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한국땅을 밟은 교황과 함께 행복했던 72시간에는 어떤 일들이 담겼을까.

△14일 17:40=차에서 내려 30m 걸은 교황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이하 협의회). 정문 인근 검은색 소형차 쏘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렸다. 시민의 환호가 쏟아지자 이에 화답하기 위해 차에서 내린 것이다. 교황은 약 20~30m를 걸었다. 11시간이 넘는 장시간 비행과 빠듯한 일정에 지쳤을 법도 하지만 시민을 향해 손을 흔들며 주민의 환호에 화답했다. 교황은 이날 염수정 추기경 등을 비롯한 33명의 한국 주교들과 만나 ‘가난한 자와의 연대’ ‘교회의 세속화 경계’ 등을 주문했다.

한국 주교들과 만나고 오후 6시 40분께 협의회를 나선 교황은 환호하며 열광하는 시민들에 둘러싸여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다시 차에서 내려 플래카드를 들고 자신을 기다린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교황의 차는 약 200m 거리를 도보에 가까운 속도로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교황은 아이 세 명과 지체장애인 1명을 차로 가까이 오게 한 후 손을 잡아준 뒤 천천히 떠났다.

△15일 10:10=여덟 번 차세워 아이 입맞춤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고자 대전 월드컵경기장에 들어서면서 교황은 모두 여덟 번 차를 멈춰 세웠다. 지나가다 아이들이 보이면 차를 세우게 한 뒤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거나 이마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한 번은 차가 한 아이를 그냥 지나치자 교황은 고개를 돌려 아이를 쳐다보며 앞좌석에 탄 수행원에게 차를 멈추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아이와 10여m 떨어진 곳에 차가 멈추자 교황은 경호원에게 아이를 데려오게 해 얼굴을 쓰다듬으며 강복했다.

경기장 밖에서 7분간의 카퍼레이드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모두 6번 차를 멈춰 세웠다. 교황은 경기장 밖에서 기다리던 시민과 신자들뿐 아니라 경기장 직원들에게도 일일이 손을 들어 인자한 미소를 건네며 천천히 이동했다. 바람이 불어 흰색 주케토(성직자들이 쓰는 원형의 작은 모자)가 날아갈 뻔하자 벗어서 왼손에 쥔 상태에서도 오른손을 들어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을 잊지 않았다.

△15일 20:00 =서강대 깜짝 방문

예정에 없던 깜짝 행보도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고 없이 서강대를 방문했다. 서강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속한 수도회인 예수회가 세운 학교다. 교황은 원래 국내 대학 중에는 대전가톨릭대만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예수회 사제들의 삶을 직접 보고 싶다며 서강대를 찾았다.

김정택 서강대 이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교황은 “고통받는 한국사회를 위로해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교황은 이날도 서강대 교정에서 만난 쌍둥이 아이들에게 입을 맞추며 축복하기도 했다. 교황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들자 교황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16일 10:00=퍼레이드 멈추고 세월호 유족 손잡아

광화문에서 열린 ‘윤치충 바오로와 동교 순교자 123위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교황은 세월호 유족이 있는 곳에서 차를 세웠다. 단원고 희생자인 김유민 양의 아버지인 김영오(47) 씨가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교황은 슬픈 표정으로 두 손을 꼭 잡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김씨는 세월호 진상 규명과 수사권·기소권을 가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에서 34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세월호 유족들은 ‘세월호 진상 규명’이 적힌 노란 피켓을 들고 교황을 기다렸다. 김씨는 교황에게 친필로 쓴 편지를 전달하며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눈물을 보였고, 교황은 김씨를 위로하며 편지를 성직자복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16일 16:30=꽃동네서 ‘손 하트’ 화답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장애인들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50여분 간의 만남 동안 선 채로 장애아동들의 공연을 관람했다. 때로는 얼굴을 어루만지고 때로는 이마에 입을 맞추거나 기도하며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경당 내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비스듬히 누워있는 장애인들, 두 다리를 쓰지 못해 바닥에 앉아 있는 장애아동들의 머리에 일일이 손을 얹고 성호를 그으며 축복했다.

희망의 집 2층에서는 팔과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아이 둘을 포함, 10명의 장애아동들이 교황 앞에서 노랫소리에 맞춰 율동을 선보였다. 공연한 어린이들이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그리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최고’라고 칭찬했다. 한 장애아동이 재차 손 하트를 그리자 교황도 손 하트로 화답하며 꼬옥 끌어안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충북 음성군 맹동면 꽃동네 희망의집에서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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