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으로 만나본 자금시장 전문가라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이성태 총재의 이 표현을 가장 기억에 남는 발언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금리인상은 `저만치 먼 얘기`라고 여기며 프라이싱을 해왔던 자금시장은 이 발언 이후 방향을 급선회하고 말았다. 이 총재의 의도대로 시장도 `문쪽으로 조금씩 이동`을 시작한 셈이다. 그리고 새해 시장은 출구전략의 한가운데에 놓일 것이다.
<이 기사는 1일 오전 8시10분 실시간 금융경제 터미널 `이데일리 마켓포인트`와 유료뉴스인 `마켓프리미엄`에 출고된 것입니다.>
◇ 출구전략 `딜레마`
사실 광의의 출구전략은 이미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그렇고, 한국은행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과 지급준비금 이자지급(지준부리) 중단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 변화도 맥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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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독립성이야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더블딥이나 경기하강 우려를 내세워 금리 인상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청와대와 정부, 재계, 그리고 이들이 추천한 금통위원들 사이에서 한은도 운신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문쪽으로 가자는 이 총재의 말을 "금리 인상이라는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또는 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말로써 시장 기대를 움직이려 의도"(최석원 삼성증권 채권분석파트장)라고 풀이하는 쪽도 있다.
실제 속내가 어느 쪽이었건 간에 대체로 새해 기준금리 인상 결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는 동의할 수 있겠다.
또 하나의 고려사항은 새해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출구전략의 글로벌 공조를 우리나라가 먼저 깰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도 한은측은 "출구전략 공조라는 게 획일적으로 주요국가들이 같은 시점에 다같이 금리를 올리자는 게 아니다. 공조라는 대원칙 하에 개별국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일부 관료나 시장참가자들은 달리 보고 있는 것 같다.
◇ 시장이 보는 변수들
이쯤에서 자금시장에서는 금리 인상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할 것이다. 시장의 전망은 기대심리를 낳고, 기대심리는 가격에 반영되고, 가격이 역으로 정책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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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1분기 GDP성장률이 연간 기준으로 7% 가까운 숫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 탓이다.
주요기관들의 내년 GDP성장률 전망치가 4~5%인데 현 2.00%인 기준금리는 `과도하게 낮은 수준`이라고 보는 한은의 스탠스를 감안할 때 그렇다.
경기선행지수와 산업활동동향 지표도 고려해야할 사안으로 보고 있다. 경기선행지수가 언제 반락할지, 하락세가 얼마나 이어질지, 설령 경기선행지수가 꺾이더라도 산업생산이 얼마나 받쳐줄 수 있을지도 변수다.
다만 금리 인상이 비정상적인 금리수준을 `정상화`하는 차원에서 단행된다면 과거 2005년말이나 2007년말 목격했듯이 한은은 선행지수가 하락할 때도 금리 인상이라는 카드를 얼마든지 빼들 수 있다. 2005년만해도 시장 기대를 비웃듯 11개월간 125bp나 금리는 인상됐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의 금리 인상 시점도 염두에 둬야할 대목이다. 최근 미 연준의 스탠스로 볼때 새해 하반기나 2011년에나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정부쪽 주장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회복세를 타고 있는 선진국 경기가 출구전략 지연으로 힘이 붙는다면 금리를 올리려는 한은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줄 수도 있어 보인다.
그 밖에도 계절적으로 1분기에 높은 상승세를 보여온 주택가격이 내년 30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토지보상금 덕까지 볼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또 경상수지 흑자가 줄면서 달러-원 환율이 올해만큼 하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물가 안정효과가 떨어지는 것도 부담일 수 있다.
아울러 3월말이면 임기가 끝나는 이성태 총재가 임기전에 금리를 한 번 올리지 않을까 하는 예상, 4월에 임기 만료되는 박봉흠, 심훈 두 금통위원 후임이 누가 될지 하는 불확실성도 변수가 될 수 있다.
◇ 금리인상기의 경험
이처럼 고민많고 변수도 많은 금리 인상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기의 문제일 뿐 정상화 차원이든 유동성 죄기 차원이든 새해 금리 인상은 사실상 불가피한 수순인듯 하다.
`금리 인상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 `거시경제 지표 개선 조차도 가격에 반영되지 않았다` 논란도 있지만, 자금시장 역시 향후 기준금리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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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과거 금리 인상기에 경험했던 일들을 토대로 할때 채권시장 상황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진 않고 있다.
대체로 금리가 처음 인상되는 시점에 시중금리도 함께 뛰는 경향은 있지만, 이후에는 오히려 금리가 안정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 이유는 금리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들에서 찾을 수 있는데, 지난 2006년 1월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기의 경우 기준금리가 올랐지만 선행지수 둔화가 맞물리며 오히려 금리는 상당기간 상방 경직성을 보였다.
2002년을 봐도 기준금리가 인상되고 산업생산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선행지수 하락으로 시중금리는 안정적이었다.
물론 새해에는 경기 회복이 지속되면서 채권 순발행이 크게 늘어나 수급 부담이 커지는 만큼 자칫 기준금리 인상이 채권값 약세를 키울 수 있다는 부담도 있지만, 하반기 경기 둔화를 염두에 둔 저가매수가 탄탄할 것으로 보여 역시 금리가 크게 뛰긴 어려워 보인다.
금리 자체의 변동성을 차치하고라도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사건은 그 자체로 시장에 많은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그동안 덜 올랐던 단기물 중심으로 금리가 상승하면 단기채쪽 투자매력이 부각될 수도 있겠다. 장기물은 인플레 기대와 발행물량 부담으로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일 수 있다는 점도 고려대상이다.
아울러 기준금리 인상은 환율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와 미국 등 선진국과의 출구전략 `디커플링`이 현실화된다면 원화의 절상압력은 커지게 되고 캐리트레이드 유입을 감내해야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