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뉴욕을 떠나며

  • 등록 2009-07-16 오전 7:17:26

    수정 2009-07-17 오전 11:44:34

[뉴욕=이데일리 전설리특파원] 서울만큼이나 바삐 돌아가는 맨해튼. 도시 한복판을 질주하던 버스가 정류장에 선다. 갑자기 버스 운전사가 운전석에서 일어나 뒷문 쪽으로 걸어나온다.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내려드리기 위해서다.
 
흑인 운전사는 휠체어를 꺼내어 할머니를 버스 좌석에서 휠체어로 옮겨드린다. 그리고 버스 뒷문의 계단이 휠체어를 내릴 수 있는 일종의 엘리베이터로 변신하도록 조작한다. 할머니께서 정류장에 내리신 뒤 임무를 마친 운전사는 운전석으로 돌아간다. 여기까지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께서 버스에서 내리시는데 걸리는 시간은 7~8분.

그러나 누구도 불평이 없다. 넉넉해 보이는 흑인 운전사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고, 뒷좌석의 승객들과 농담을 주고 받는다. 다른 승객들도 웃으며 담소를 나눌 뿐. 할머니께서 버스에서 내리시기 전 잠시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미안한 듯 미소를 건네는 그녀에게 미소로 답했다.

서울에서는 흔히 접할 수 없는 이같은 광경은 무척이나 감동스럽게 느껴졌다.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 숨겨진 더 큰 대중적 합의. 바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다.
 
▲ 뉴욕 맨해튼의 중심가 타임스 스퀘어의 풍경. 맨해튼은 거주자의 40%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을 정도로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어 일명 `모자이크 도시`로 일컬어진다.
거주자의 40%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을 정도로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어 일명 `모자이크 도시`로 일컬어지는 맨해튼. 이민의 역사로 탄생한 맨해튼은 태생적으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한다.
 
한여름에 어그 부츠를 신어도, 한겨울에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조깅을 해도 누구도 이상하다는 듯한 눈길로 쳐다보지 않는 도시가 이곳 맨해튼이다. 인종과 피부색, 나이, 성별, 장애의 여부에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존중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바로 여기에 `세계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 맨해튼 경쟁력의 정수가 숨어 있다.

귀임을 앞두고 귀국 보따리에 가장 담고 싶은 것을 꼽으라면 바로 이것이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다름의 자연스러운 공존. 나와 생각이 다른 이가 곧 적(敵)이 되지 않으며, 비록 경쟁자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자세.

맨해튼 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기용했다. 제너럴모터스(GM) 등 자동차회사들의 파산보호 신청 과정에서도 감원 대상이 된 수 만명의 직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며 격렬히 시위하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자원이 부족하고 영토 또한 좁은 대한민국. 그래서 툭하면 나오는 정책 목표가 `~허브`다. `허브`란 여러 세계를 연결짓는 다리 역할을 하는 중심지. 바로 동북아의 맨해튼, 국제적인 도시로 발돋움해 선진국으로 도약해 보겠다는 꿈이다.
 
그러나 제도와 정책이 마련된다고 해서 국제적인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까. 국제 도시에 걸맞는 시민 의식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수 차례 그래미어워드를 수상한 록그룹 유투(U2)는 세계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로부터 `하나됨(Oneness)`이라는 페스티벌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룹의 보컬 보노는 `달라이 라마를 좋아하고, 티벳의 비폭력적인 자세를 존경하지만 행사의 취지는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We're one But we're not the same.(우리는 하나. 그러나 같지 않다.)

인정하자. 너와 나는 같을 수 없다. 생각 또한 다른 것이 당연하다. 나와 다른 상대방을 존중할 때 평화로운 공존 속에 다양성이 싹을 틔울 수 있다. 그 다양성 안에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의 열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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