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edaily 이의철특파원] 최근 미국기업들을 구분하는 하나의 잣대는 스톡옵션의 회계처리방식이다. 미국내 모든 기업들을 일렬로 세운 뒤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으로 구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코카콜라가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미국의 내노라하는 기업들이 속속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과 제너럴모터스와 같은 전통 제조업체는 물론이고 금융기업들도 "대세를 따르겠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미국 최대의 금융회사인 시티그룹이 이달 초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고 뒤를 이어 JP모건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아멕스 뱅크원 등이 내년 회계연도부터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계상한다고 발표했다. 보험회사인 AIG와 메트라이프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당초 금융회사들은 임직원들에 대한 보상책으로 스톡옵션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어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할 경우 순익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따라서 이같은 회계방식을 채택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결국 대세에 굴복하고 말았다.
불과 한달전만 해도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기업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월가의 블루칩인 S&P500 기업 중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곳은 우주항공 업체 "보잉"과 식료품 체인업체 "윈-딕시" 밖에 없었다.
이러던 참에 세계최대의 음료회사로 시가총액 10위인 코카콜라가 워렌 버핏의 강요(?)-워렌 버핏 벅셔 헤더웨이 회장은 코카콜라의 대주주이자 이사회 멤버다-로 스톡옵션의 비용처리에 총대를 맸고 이어 언론기업인 워싱턴포스트, 식품업체인 돌 등이 여기에 가세했다.
마침내 스톡옵션의 비용처리는 월가의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기술기업들은 여기에 맹렬히 반대하고 있다. 인텔이 스톡옵션을 비용처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소프트업체인 피플소프트도 마찬가지 입장을 피력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시스템즈 KLA텐코 등도 스톡옵션의 비용처리에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톡옵션의 비용처리를 놓고 왜 이렇게 입장이 갈리는 것일까?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스톡옵션의 비용처리를 받아들이는 기업들은 이로 인한 순익 감소가 상대적으로 적다. 메트라이프나 AIG의 경우 스톡옵션을 비용처리하면 주당순익이 2센트~5센트 정도 감소한다. 월마트의 경우 주당 1센트 정도 감소한다. 비록 순익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참아낼 수 있는 정도다.
그러나 기술기업들의 상황은 다르다. 인텔의 경우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할 경우 지난해 순익이 13억달러에서 2억5400만달러로 줄어든다. 피플소프트는 1억9150만달러에서 6700만달러로 급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순익으로 주가가 형성되는 월가에서 순익이 절반 이상 줄어드는 것은 치명타다. 현재의 주가가 두동강 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기술기업 입장에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카드인 셈이다.
당초 스톡옵션은 인센티브보다는 기업경영진의 모럴 해저드를 방지하기위해 설계된 장치중의 하나였다. 경영진에 대한 보수를 회사의 성과와 연계시킴으로써 "소유자-대리인"딜레마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80년대 초 투자자들은 기업 주가에 관계없이 CEO가 엄청난 보수를 받는 것에 불만을 품고 이들의 연봉을 주주들의 이익과 연계시키는 조치를 담은 "CEO개혁안"을 만들었다. 그 주요 내용중 하나가 스톡옵션이다. 그러나 이같은 스톡옵션제도가 90년대의 "비이성적 탐욕"과 연계되면서 투자자들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 기업 경영진들에게 스톡옵션을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제공하기로 한 것은 바로 투자자들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비용처리 여부와 별도로 스톡옵션의 또 다른 문제는 과연 경영진의 성과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느냐는 문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사이클에 따라 순익이 크게 달라지는 등 반도체 경기에 민감하다. 자연히 주가도 여기에 연동된다. 반도체 호경기때는 경영진의 성과와 상관없이 주가가 올라가고, 반도체 경기가 나빠지면 경영진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도 주가는 떨어진다. 스톡옵션이 본래 취지와는 상당히 다르게 운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때 미국기업의 가장 대표적인 성장엔진으로, 그래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제도로 칭송받던 스톡옵션. 지금은 "비이성적 탐욕"의 도구로 인식되면서 이곳 저곳에서 공격을 받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스톡옵션제도에 대한 또 다른 손질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