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여는 옛말…한국판 섹스앤더시티 '아홉수 우리들'[툰터뷰]

웹툰 '아홉수 우리들' 작가 수박양 인터뷰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인 세 우리들의 우정과 사랑
"20대에 한 연애가 나를 알게하고 성장시킨다고 생각"
"모든 우리에 본인 모습 투영…최애 캐릭터는 안준"
  • 등록 2024-09-22 오전 8:00:00

    수정 2024-09-22 오전 8:00:00

한국을 대표하는 콘텐츠들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아이돌 그룹을 필두로 한 ‘K팝’을 비롯해 ‘K푸드’, ‘K패션’ 등 ‘K’는 한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됐습니다. 웹툰도 그 중 하나입니다. 스마트기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을 내리거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를 넘겨보는 방식의 웹툰은 한국이 세계 최초로 선보인 콘텐츠입니다. 최근에는 네이버웹툰이 세계 굴지의 정보기술기업들이 즐비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했습니다. 이데일리는 또 하나의 ‘K’ 신화를 만들어 갈 국내 웹툰작가들을 릴레이로 인터뷰합니다.[편집자 주]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한때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이 있었다. 여자들끼리 서로 질투하고 시샘하고, 끌어내리기 바쁘다는 그런 인식에서 비롯된 단어다. 물론 가끔 그런 경우를 보기도 하지만 그건 비단 성별의 문제 만은 아니라는 데 많은 여자들이 공감할 것이다. 주변에서 이른바 ‘남자답다’는 평과는 정반대인 남자가 존재하듯, 여자들 사이에서도 끈끈한 의리를 지켜가는 우정이 존재한다.

웹툰 아홉수우리들 표지.(이미지=네이버웹툰)
웹툰 ‘아홉수 우리들’에 등장하는 세 우리들이 바로 그런 우정을 보여준다. 봉우리, 차우리, 김우리 세 명은 18살에 한 반이 되었던 인연으로 절친한 친구가 됐고, 30살을 바라보는 29세까지 막역한 사이를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태어나고 자란 배경도, 성격도, 스타일도 모두 다르지만 쓴소리와 응원을 주고 받으며 각자의 커리어와 사랑을 키워나간다. 한국판 ‘섹스앤더시티’가 언뜻 떠오르기도 한다.

수박양(본명 박수연·34) 작가는 5년째 연재 중인 웹툰 아홉수 우리들을 통해 20대 젊은이들에게 지금의 실패와 좌절이 각자의 성장 기반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특히나 그는 연애의 경험을 통해 나를 알게 되고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좋은 연애건 나쁜 연애건, 연애만큼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 데뷔작인 아홉수 우리들을 인기 웹툰의 반영에 올린 수박양 작가를 9월 초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어느덧 239화를 넘어섰는데 장기 연재를 축하합니다. 전체 스토리의 어느 정도 달려왔다고 보면 되나요.

미리보기를 포함해 240화를 기준으로 휴재를 결정했는데요, 60화 연재하고 4~5개월 가량 휴재하는 방식으로 시즌을 끊고 있습니다. 휴재 기간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원고 제작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제대로 휴식을 취하려면 4~5개월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웹툰 작가들이 보통 오래 앉아서 작업을 하다보니 손목이나 어깨, 목 등에 크고 작은 지병을 갖고 있거든요. 저도 운동도 좀 하고 치료하면서 다음 연재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결말은 이미 정해져있고, 지금 80% 정도 연재했으니 다음 시즌에는 완결할 듯 합니다.

△스토리를 구상한 배경은요.

20대 후반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의 경험을 전달하고 싶기도 했고, 같이 20대를 지나온 친구들의 경험을 보면서 다들 힘든 시기를 겪는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반드시 ‘이래야 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20대를 지나며 겪는 일들이 그렇게까지 힘든 일이 아니라는 정도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원래 인생은 안좋은 일들이 이어질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좋은 일이 생기면서 점점 희석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각각의 캐릭터는 주변인물 중에서 따온 건가요. 본인과 가장 닮은 캐릭터는요.

초반에는 메인 캐릭터인 봉우리가 저랑 MBTI도 똑같고 제 모습이 담겨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5년간 연재를 하다보니 각각의 우리들에게도 제 인격이 조금씩 들어갔다는 걸 알게 됐죠. 기본적으로는 차우리랑 사상이 비슷하고, 사람이나 사랑을 대하는 방식은 봉우리랑 비슷해요. 주저하고 겁이 많고, 선택을 잘 하지 못하는 모습은 김우리와 비슷합니다.

차우리의 승무원 캐릭터는 실제로 승무원을 하고 있는 친한 동생에게서 영감을 받았어요. 김우리의 공무원 시험 준비도 친구들의 경험에서 따왔고요.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4년간 일하며서 웹툰 작가 데뷔를 준비했는데요, 네이버 웹툰에서 처음 도전하고, 정식 연재 제안 메일을 받을 때까지의 기간이 정말 힘들었기에 당시 경험도 녹였습니다.

△세 우리가 각각의 커리어를 전개하며 사랑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연애 이야기도 본인의 경험이 많이 녹아있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만 다 제 이야기는 아니예요. 독자들이 가끔은 너무 몰입해서 다 제 이야기로 오해하실 때가 있더라구요. 특히 봉우리를 빗대어 제게도 친언니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시는데, 사실 저는 오빠가 있습니다. 또 봉우리 부모님이 아버님의 바람으로 이혼하는데, 그것도 제 경험담 아니냐는 오해가 있지만 저희 부모님은 잘 살고 계십니다. 하하.

저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보니 제 경험으로 느낀 감정들을 많이 차용해서 쓰긴 하지만 똑같지는 않습니다.

수박양 작가가 9월 초 망원동의 카페 페트롤 플레이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봉우리의 남자 두 명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가 엇갈리는 것 같은데요.


맞아요. 10대나 20대 여성분들은 오랫동안 사귀다 헤어진 안준을 좋아하고, 봉우리가 안준과 헤어지고 잠시 만났던 산 셰프를 두고는 재미없고 아저씨같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연애 경험이 있거나 결혼한 30대 이상 여성분들은 무조건 산 셰프를 좋아하시더라고요. 준이와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가 또다시 헤어지는 건 처음부터 계획했던 부분인데 많은 분들이 예상 못했다고 하셔서 재미있었어요.

산 셰프는 ‘좋은 남자’를 그리고 싶어서 만든 캐릭터입니다. 드라마나 영화, 만화에서는 왜 주로 나쁜 남자들만 등장할까, 현실에서는 좋은 사람이 있는데 왜 작품에서는 볼 수가 없을까 하는 생각 끝에 만들었어요. 막상 만들어보니 저도 왜 좋은 남자가 안나오는지 알겠더군요. 매력적으로 보여주기가 어렵더라고요.

등장인물들의 연애와 관련해서는 제가 20대 때 만나서 한 연애가 쉽지 않았던 점에 방점을 두었어요. 그 때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로 남자들을 만나거든요. 나는 사실 이걸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만났는데 아닐 수도 있고, 무작정 상대방에게 맞춰주다 지쳐버리기도 하고요. 저는 30대가 돼보니 ‘나’에 대해 조금 알겠더군요. 20대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만족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저처럼 나를 잘 모르다가 30대가 돼서야 나를 알게 된 분들도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우리의 남자인 영광이가 사용하는 경상도 사투리에 대한 지적도 종종 나오는데요, 알고 계시나요?

영광이의 사투리는 처음부터 다 검수를 받아서 썼는데 계속 댓글에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어요. 댓글을 많이 보는 편인데, 정말 철저히 검수를 받아도 꾸준히 지적이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경상도 토박이인 다른 작가님들이 본인들도 그런 댓글이 달린다는 말을 하시더군요. 사실 영광이의 사투리를 통해 표현하려던 포인트는 ‘표준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부산 사람’입니다. 실제로 그런 친구가 주변에 있는데 그걸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아홉수 우리들에서 연애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큰 것 같아요.

아홉수 우리들을 두고 저는 로맨스 앤 성장물이라고 부릅니다. 독자분들 중에 왜 캐릭터들이 연애만 하느냐, 소위 ‘남미새(남자에 미쳤다는 뜻)’라며 봉우리를 비난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홉수 우리들은 1차적으로 로맨스물이 맞아요. 연애하는 방식, 사랑을 하는 태도를 통해 캐릭터들의 사고방식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봉우리 외에 차우리는 사랑을 회피하는 사람이고, 김우리는 짝사랑을 주로 하는 사람인데 이런 걸로도 인생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고 봐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연애 만큼 나에 대해서 알게 하고 사람을 성장시키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연애든 나쁜 연애든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보거든요.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는요.

사실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항상 안준이었어요. 만화를 보다보면 준이 캐릭터 비중이 엄청 큰데요, 현대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캐릭터죠. 성공한 부모님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지만 ‘남보다 더 잘돼야 한다’, ‘남보다 저 잘살아야 한다’는 부모님으로부터 주입된 이데올로기를 뒤집어 쓰고 있죠. 사실은 그냥 좋아하는 여자랑 둘이 행복하게 살고 싶고 강하지 않은 사람인데 끊임없이 성장하고 성공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하는 그런 캐릭터예요. 작가로서는 쓰면서도 재미있는 캐릭터이기도 하고 주변에서 꽤 많이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여자친구인 봉우리는 낭만을 쫓는 친구이기 때문에 정 반대의 성향이예요.

독자분들 중에 나약하고 징징댄다면서 봉우리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어떻게 보면 가장 강한 캐릭터가 봉우리이기도 합니다. 봉우리는 그때 그때 자기 감정과 상황에 엄청 솔직한 편인데 20대 때는 힘든 상황에서 솔직해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그런 점에 있어서 30대 이후의 삶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준이보다는 봉우리가 더 행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완결까지 사람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예정입니다.

△각 캐릭터들의 의상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각각의 캐릭터에 맞는 의상도 그렇지만 상당히 패셔너블한것 같아요.

제 만화에는 명암이 없기 때문에 색감으로 분위기 등을 표현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주로 입는 옷 색깔도 캐릭터마다 다른데, 봉우리는 파스텔 색상, 차우리는 빨강이나 검정 의상을 주로 입어요. 제가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그게 반영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대 친구들의 이야기다보니 너무 비싼 아이템은 하나도 그리지 않아요. 표지에는 명품도 종종 그리지만, 만화에서는 주로 홍대에서 젊은이들이 주로 입는 듯한 의상과 소품을 그립니다. 소품과 인테리어 등을 신경써서 작업하는 것도 작가로서 재미난 부분이예요.

△휴재기간에 가장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연재 중에 못했던 개인적인 일들을 하려고 합니다. 못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카페가서 아무 것도 안하고 앉아있기도 하고요. 영화나 애니메이션, 책, 만화도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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