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이렇게 자유로울 수가

-심사위원 리뷰
고잉홈프로젝트 '베토벤 전곡 시리즈 2'
지휘자 없이 신선한 연주 선보여
보수적 클래식계 '발상의 전환'
  • 등록 2024-08-12 오전 5:30:00

    수정 2024-08-12 오전 5:30:00

[이상민 클래식 음악 큐레이터] ‘고잉홈프로젝트’는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이름이다. 해외 각기 다른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 중인 한국 출신 음악가들이 주축이 돼 만든 오케스트라다. 이들은 오케스트라 정규시즌에는 함께 연주할 기회가 없다. 해외 오케스트라가 시즌을 끝내고 잠시 휴식에 들어가는 7월과 8월에만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고잉홈’이라는 단어가 붙었고, 늘 모일 수는 없지만 잠시나마 특별한 연주를 위해 모이기 때문에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이다. 여기에 우리와 정반대 입장에서 외국이 고향이지만 한국을 제2의 고향 삼아 활동하는 외국 연주자들도 뜻을 같이하며 외연이 넓어졌다.

지난 7월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고잉홈프로젝트 ‘베토벤 전곡 시리즈 2’ 공연의 한 장면. (사진=고잉홈프로젝트)
고잉홈프로젝트가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 중이다. 지난 7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그 두 번째 시리즈 공연이 열렸다. 고잉홈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지휘자가 없다는 점이다. 지휘자 한 사람에 의해 전체 음악을 빚기보다 멤버들이 서로 의견을 수렴하고 교환하며 자유롭게 연주하기 위해서다. 연주자들은 오케스트라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연주 의상을 통일하지 않고 자유롭게 갖춰 입고 등장했다.

첫 곡으로 베토벤이 오페라 ‘피델리오’를 위해 작곡한 ‘레오노레 서곡 2번’을 연주했다. 지휘자 없이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기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지만 맺고 끊음이 이어지는 이 곡에선 지휘자의 부재가 가끔 드러났다.

두 번째 곡은 이 시리즈 중 유일하게 협연자들이 등장하는 협주곡이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 첼리스트 김두민이 독주자로 나서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을 연주했다. 이 협주곡은 지휘자가 있으면 전체 균형은 지휘자에 맡기고 세 악기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경쟁하는 구도를 취한다. 그러나 이날은 세 연주자 모두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서로 배려하며 삼각 균형을 맞춰 나갔다. 특히 저음 악기의 특성상 부각이 잘 안되는 첼로 연주가 마치 베토벤의 첼로 협주곡(베토벤은 첼로 협주곡을 단 한 곡도 작곡하지 않았다)을 듣는 것처럼 색달랐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배려로 만든 신선한 연주였다.

지난 7월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고잉홈프로젝트 ‘베토벤 전곡 시리즈 2’ 공연의 한 장면. (사진=고잉홈프로젝트)
후반부에 이어진 베토벤 교향곡 4번 연주는 그야말로 지휘자 부재의 장단점을 여실히 보여준 무대였다. 단원 각자에 자율성을 부여한 자유로운 개성과 다양한 요소를 부각해 전에 듣던 음악과 다르게 다가오는 신선함을 제공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신속하게 통과해야 할 대목에서는 가끔 주춤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뜻이 함께 모여 질주할 때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여러 스타 연주자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도 즐거웠다. 상당히 공들여 열심히 준비한 연주회였다. 오케스트라에는 지휘자가 없을 뿐, 누군가는 지휘자의 역할을 해야만 했다.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가 온전히 그 몫을 했다. 그는 지휘자 없이 더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후반부에서는 단원 모두가 서서 연주하는 방식을 택했다. 마지막 악장에서 과도한 몸짓 탓에 활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변화에 둔감한 보수적인 클래식 무대에서 고잉홈프로젝트가 보여주는 새로운 도전과 발상의 전환은 클래식 연주회의 커다란 활력이 될 것이다.

지난 7월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고잉홈프로젝트 ‘베토벤 전곡 시리즈 2’ 공연의 한 장면. (사진=고잉홈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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