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마일' 경계감 더 커져, 금리인하 기대 눌렀는데…환율 폭주

한국은행, 기준금리 3.5%로 10회 연속 동결
소비자물가 불확실성↑…"금리 인하 깜빡이 안 켰다"
"하반기 예단 어렵다"…7월 인하 기대 꺾여
외환시장 개입 의지 '물음표' 1370원 지붕 뚫은 환율
  • 등록 2024-04-15 오전 5:10:00

    수정 2024-05-27 오전 9:34:53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에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물가가 재반등할 수 있다는, 이른바 ‘라스트 마일’(Last mile·목표에 이르기 전 마지막 구간) 경계감에 7월 금리 인하를 바라보던 시장 기대를 누른 것이다. 채권시장은 금리 인하 시점과 그 폭에 대한 조정에 나섰지만, 외환시장은 오히려 브레이크가 고장난 트럭처럼 직진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하반기 금리 인하 전망에…‘중립 기어’

한은은 지난 12일 금통위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연 3.5%)으로 동결했다. 작년 2월부터 이어진 10회 연속 동결이다.

여전히 물가가 목표(2%) 수준에 수렴한다는 확신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 한은이 금리 동결을 결정한 배경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전년동월대비 3.1%를 기록하는 등 두 달 연속 3%대를 보였고, 기대인플레이션율은 5개월 만에 반등했다. 특히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유가는 배럴당 90달러 선까지 오르는 등 한은 전제치(80달러대 초중반)를 넘어섰고, 원·달러 환율은 1380원 직전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조기 금리 인하 기대를 꺾는 데 주력했다. 이 총재는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지난 2월 금통위 당시 ‘5월 지표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한 입장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근원물가는 예상대로 움직이지만 소비자 물가는 농산물, 유가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현 상황을 ‘깜빡이를 켜지 않은 자동차’에 비유했다. 그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하반기 월평균 2.3%를 보이면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고, 2.3%보다 높으면 금리 인하가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금리조정을 자동차 깜빡이에 비유하곤 하는데, 현재 깜빡이를 켠 상황은 아니고 깜빡이를 켤지, 말지 자료를 보고 고민하는 단계”라고 했다.

특히 이 총재는 데이터를 더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5~6월 전 세계 경제와 여타 중앙은행의 결정을 봐야할 것 같다”며 “개인적으로 두 번 정도 데이터를 더 봐서 (통화정책에 대한) 확신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5월 수정경제 전망과 6월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결정을 지켜본 뒤 결정을 내리겠다는 셈이다.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의 ‘3개월 포워드 가이던스’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위원이 기존 1명에서 추가되지 않았다는 점도 7월 인하 가능성을 낮췄다. 지금부터 3개월 뒤는 7월이기 때문에 7월 금리 인하를 위해선 이번 금통위 회의 때 3개월 뒤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는 위원이 추가로 나와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었다.

시장은 통화정책방향문에서 긴축 기간을 수식했던 ‘장기간’ 표현이 삭제되면서 환호했지만, 이 총재 기자회견을 거치면서 전망을 수정했다.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추고, 인하 폭은 하향했다. 기존 ‘5월 금리 인하 소수의견, 7월 인하, 연중 세 차례 인하’ 전망에서 ‘7월 금리 인하 소수의견, 8월 인하, 연중 한두 차례 인하’로 전망을 수정한 것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긴축기조의 ‘장기간’ 부담은 벗었지만, 인하의 깜빡이를 켜기 위한 조건으로 소비자물가 안정 확인에 향후 2개월 정도가 필요해졌다”며 “환율, 유가가 현 수준에서 추가 상승할 경우 3분기 금리 인하 기대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석길 JP모건 금융시장운용부 본부장은 “금리 인하 시그널이 3분기에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4분기에 실질적인 금리 인하가 이뤄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제공)
지붕 뚫은 환율

외환시장의 금통위 해석은 사뭇 달랐다. 이 총재 기자회견 직후 환율은 1370원을 넘어서며 장중 1375.5원까지 올라섰다. 마감 가격도 1375.4원으로 2022년 11월 10일(1377.5원) 이후 최고치를 1거래일 만에 경신했다.

발단은 이 총재의 환율에 대한 평가였다. 이 총재는 “달러 강세 속에 중국, 일본 등 주변국 통화 약세의 영향에 원화가 펀더멘털 대비 과도하게 절하되는 면이 있지 않은지 유심히 보고 있다”면서도 “달러 강세 영향으로 우리나라만 환율이 절하되는 것이 아니다. 해외 순자산이 늘어나는 등 선진국형 외환시장 구조가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쏠림 현상’이 있을 때 개입할 의지나 여력이 있다는 원론적인 발언이지만, 현재 환율 수준에 대해 불편하다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시장은 외환당국의 개입의지가 크지 않다고 본 것이다. 한 시중은행 딜러는 “시장에서는 환율 상단이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총재가 예상을 뒤집었다”며 “외환당국이 당분간 이 수준을 용인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유일한 하방압력 재료는 외환당국 개입 경계감이었는데 상단이 많이 열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뼈 아픈 실책이 됐다. 환율의 중요성 역시 기자회견에서 시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기대가 미뤄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것이 우리 통화정책 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는 환율로 인해 우리 물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봐야 한다”고 했다.

한은은 소통 오류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14일 이데일리와 통화에서 “시장에서 한은이 환율 수준을 안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잘못 이해한 것 같다”며 “현재 이란·이스라엘 사태를 주시하면서 환율에 대해 경계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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