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재’에는 민족의 역사와 뿌리가 담겨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듯이 수천, 수백년을 이어져 내려온 문화재는 우리 후손들이 잘 가꾸고 보존해 나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죠. 문화재는 어렵고 고루한 것이 아닙니다. 문화재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쉽고 친근하게 배울 수 있는 문화재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주>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최근 고려 공예의 진수를 보여주는 800년 전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가 고국으로 귀환했어요. 이번에 환수한 유물은 일본 개인 소장가의 창고에서 100년 이상 보관된 것으로 최근까지 일본에서도 그 존재가 감춰져 있었어요. 3년 전 이를 사들인 고미술 관계자가 지난해 7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존재를 알렸고, 1년여 간의 조사와 협상을 거쳐 마침내 올 7월 국내로 환수하게 된 것이죠. 고려 나전칠기는 청자, 불화와 함께 고려를 대표하는 예술 공예품으로 손꼽혀요. 하지만 전 세계에 남아있는 유물은 20점도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과연 고려 나전칠기는 어디에 흩어져 있는 걸까요.
| 일본에서 환수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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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확인된 유물 가운데 제작 시기가 분명하고 상태가 양호한 건 총 15점으로 파악되고 있어요. 이 중 절반 가량인 7점이 일본에 있습니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나전국화무늬경전함’과 ‘나전국화넝쿨무늬경전함’이 있고, 기타무라미술관에 ‘나전모란넝쿨무늬경전함’이 있어요. 3점 모두 일본 중요문화재로 등록돼 있죠. 국내에는 2020년 일본에서 환수한 ‘나전국화넝쿨무늬합’ 등 3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어요. 뚜껑이 있는 그릇 형태의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은 길이가 10㎝ 정도에 불과한데요. 꽃잎 3개를 붙인 모양의 유물은 미국, 일본에 있는 나전 합을 포함해 3점뿐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또 다른 고려 나전인 ‘나전경함’도 소장하고 있어요. 나전경함은 두루마리 형태의 불교 경전을 보관하던 상자를 말하는데요. 고려 나전경함 중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유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보물로 지정됐죠. 이번에 환수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포함하면 국내 고려 나전칠기는 총 4점으로 늘어납니다. 고려 공예예술의 정수로 평가받는 나전칠기가 많지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소재가 부서지기 쉬운 목재인데다 외세의 침입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
나전칠기는 자개로 무늬를 장식하고 칠을 한 공예품을 말하는데요. 목재, 옻칠, 자개,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작게 오려낸 자개를 일일이 붙여 꽃과 잎의 문양을 장식합니다. 고도의 정교함과 복잡한 제작과정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에 ‘공예 기술의 집약체’라고도 일컫죠. 12세기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의 서긍은 ‘고려도경’에 “나전 솜씨가 세밀하여 가히 귀하다”라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 일본에서 환수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의 세부 무늬(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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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환수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고려 나전칠기의 대표적인 문양인 국화넝쿨무늬, 모란넝쿨무늬, 연주무늬(점이나 작은 원을 구슬을 꿰맨 듯 연결해 만든 무늬)가 고루 사용됐어요. 전체 면에 자개로 약 770개의 국화넝쿨무늬를 장식하고, 뚜껑 윗면 테두리의 좁은 면에는 약 30개의 모란넝쿨무늬를 배치했죠. 외곽에는 약 1670개의 연주무늬가 촘촘히 둘러져있어요. 사용된 자개의 수만 약 4만5000개에 달합니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13세기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자개로 국화 또는 모란무늬를 기물 전면에 빼곡하고 규칙적으로 배치한 점, 단선의 금속선으로 넝쿨 줄기를 묘사한 점, 매우 작게 오려낸 자개에 음각의 선을 그어 세부를 표현한 점 등은 고려 나전칠기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성을 보여주고 있어요.
| 일본에서 환수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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