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법과사회]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 때로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법과 사회’에서는 사회적 갈등, 논쟁과 관련된 법을 다룹니다.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 보이콧을 철회했습니다. 정부가 추석 성수기 분류작업을 위한 추가인력 투입 등 대책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잇따른 택배노동자 사망으로 구성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집단행동 관련 기자회견장에 들고 온 피켓에는 ‘죽음의 공짜노동 거부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번 집단행동의 계기가 된 택배 분류작업을 이르는 말입니다.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택배노동자 분류작업 전면거부 돌입 및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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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들은 이 분류작업을 ‘까대기’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자신의 배송지역에 해당하는 물품을 분류하는 작업입니다. 뚜렷한 이유 없이 기사들이 맡기 시작한 이 일은 물량이 크게 늘어나 택배가 국내 소비시장의 중요한 한 축이 된 현시점에서도 기사들이 계속 맡고 있습니다.
택배노조는 분류 작업만 하루 평균 6시간 이상을 한다며 택배기사들 대다수가 하루 13시간에 이르는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는 주원인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상식적으로 택배회사가 업무 효율을 위해서라도 이 분류작업을 개별영역화·전문화할 법도 하지만, 국내 대형 택배사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기사들이 이 과중한 작업을 ‘공짜’로 해줬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공짜노동이 가능했던 데는 택배기사들이 택배사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법률적인 모순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택배사가 확보한 물류를, 택배사가 요구하는 운임에, 택배사가 원하는 장소에 배송하는 것이 택배기사들의 업무입니다. 하지만 법률적으로 이들은 개인 차주로서 택배사와 계약을 맺은 사업자로 취급됩니다. 계약서 조항에도 없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걸리는 분류업무까지 택배기사들이 떠맡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렇습니다.
| 18일 오전 서울 한 시내의 물류센터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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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2000여명 규모의 국내 택배기사 중 대부분은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1년 단위로 화물운송사업체와 ‘배송업무 위탁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마저도 택배 본사가 아닌 대리점과 계약을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택배사들은 이들이 본사에 직접 노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을 들어 노동자성을 부정해왔습니다.
이같은 문제로 그동안 택배노동자들의 업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고 지난해 11월에는 법원에서 택배노동자들이 만든 노동조합 역시 적법하다며 사실상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최초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법원은 택배기사 주요 소득이 택배사들로부터 지급받는 수수료이고 주로 택배사에 소득을 의존하고 있는 점, 이 소득을 결정하는 위수탁계약을 택배사가 일방적으로 지정한다는 점 등을 들어 택배사나 대리점이 노조의 교섭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나 노동 관련 법률에서 판결과 현실은 대개 거리가 멉니다. 판결이 나온 지 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대형택배사들은 택배기사들을 사업자 취급하고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 논의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코로나19 확산으로 물량이 폭증해 올 한해만 7명의 택배노동자가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택배노동자 4000여명이 물량이 몰리는 추석을 앞두고 비난 여론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공짜노동’을 거부하게 된 사연입니다.
| 18일 오전 서울 한 시내의 물류센터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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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택배사들은 각종 비용절감 노력으로 저렴하면서도 매우 빠른, 세계에서 찾기 힘든 고품질의 택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건강과 안녕을 해쳐가면서까지 누려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초유의 감염병 사태로 비대면 거래가 크게 늘고, 택배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이 시대에 이 질문은 더욱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