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경제지표]"떼일수도 있는데"…장기간 빌려준 돈 이자가 더 싼 이유

만기가 길수록 리스크 부담 커져 금리도 오르는게 일반적
2007년 후 12년 만에..美국채 금리 ‘3개월물’>‘10년물’
장·단기 역전은 곧 ‘경기 침체’ 공식에 시장 ‘혼란’
3개월물 공급 확대 따른 현상일 뿐 경기침체 상황 아냐 반박도
  • 등록 2019-03-27 오전 12:36:47

    수정 2019-03-27 오전 9:18:14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김정현 안승찬 기자] 친구가 갑자기 연락을 해 100만원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빌려주실 건가요. 이자는 얼마나 받을 건가요. 아, 여기서 친구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100만원을 갚는다는 전제입니다.

아마 돈을 빌려가는 기간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하루만 빌리겠다고 했다면, 이자를 받지 않고 빌려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자는 필요없고 값기나 잘하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10년을 빌리겠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10년 동안 빌려주면 내가 감내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혹시 100만원이 꼭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고요, 어디 금융상품에 넣어두고 이자도 차곡차곡 받을 수 있는데, 그런 것도 포기해야 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친구가 망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됩니다. 하루를 빌려주는 것보다 10년을 빌려주려면 더 높은 이자를 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오래 빌려줄 수록 이자도 높아지는 게 상식

내가 국가에 돈을 빌려주는 경우(국채를 구입하는 경우)도 똑같습니다. 100만원을 3개월만 빌려줬다면 연 이자율이 낮아도 만족할 수 있겠죠. 가령 2.5% 이자율이라면 빌려줄 겁니다. 그러나 10년간 빌려준다면 더 많이 받아야 합니다. 연 3.5%는 이자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게 시장의 상식입니다. 국채 3개월물 금리보다 10년물 금리가 더 높은 이유입니다. ‘정상적인’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적어도 최근 12년 동안은 단 하루도 예외 없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비정상적인’ 상황이 지난주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국채 3개월물 금리보다 낮아진 겁니다. 22일(현지시간) 3개월물 금리가 2.4527%를 가리켰는데,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그보다 낮은 2.4399%를 나타낸 겁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는 건 보통 두 가지 원인 때문에 나타납니다. 하나는 심각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팽배할 때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반적으로 경제가 계속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3개월물 금리보다 10년물 금리가 높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만큼 돈을 빌려준 시간이 길어지는데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을 얹어 주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올해보다 내년이, 내년보다 그 다음해의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주식과 부동산 등 모든 가격이 하락합니다. 돈이 있어도 마땅한 투자처 찾기가 힘듭니다. 은행에 맡겨도 높은 이자를 받기 힘듭니다. 심지어 은행이 망하기도 합니다.(20년전 외환위기때 많은 은행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럴때는 절대 떼먹거나 망할 일이 없는 국가에 돈을 빌려주는 게 남는 장사입니다.

확실하게 원금을 돌려받는 건 물론 약간의 이자 수익까지 챙길 수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 국채를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이때 경제가 언제 좋아질 지 모르니 돈을 오랜 기간 빌려주려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이들은 3개월보다 5년, 5년보다 10년짜리를 더 선호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만기가 긴 채권일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금리는 떨어집니다.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으니 정부가 지불해야할 이자가 낮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죠.

“이번엔 침체신호 아니다” 주장도

두번째 경우는 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중앙은행이 다양한 이유로 기준금리를 급하게 올리는 경우입니다.

경기가 나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면 장기 채권의 금리는 떨어진다는 건 좀 전에도 설명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자꾸 올리면 당장 만기가 짧은 단기물은 기준금리의 영향을 더 많이 받습니다. 단기물의 금리가 올라가고, 어느새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실제 장단기 금리 역전은 경기 침체를 적중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 60년간 미국에서 국채 10년물과 3개월물 격차가 역전된 게 8번이 있었는데 그중 7번은 1∼2년 후 경기 침체가 왔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번 장단기 금리 역전을 경기 침체의 신호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장단기 금리역전이 일어난 다음날 “경기침체를 야기할 것이란 경고는 분명히 아니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아지기 때문에 만기 기간에 따른 채권의 수익률 곡선은 우상향하는게 일반적이지만, 지금은 만성화된 저물가 때문에 이 곡선의 기울기가 많이 평탄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다 요즘 미국에서 3개월물 국채를 유독 많이 발행해 잠깐 단기 금리가 올라간 것이지, 구조적인 역전 상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수요가 아닌 공급에 의한 금리 역전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렇더라도 마음을 완전히 놓기는 어렵겠죠. 그나마 선방하고 있다던 미국마저 경기 침체가 나타나면 대외개방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별로 빠져나갈 구석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장단기 금리가 계속 역전되는지, 잠깐 그러다 마는 것인지 관심있게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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