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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최근 서울 아파트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가운데 집값 담합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를 막아달라는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OO지역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 지역 30평대가 15억원은 가야죠”, “근처 OO아파트 30평형은 7억~8억원에 매물도 없다는데 우리 아파트는 5억원대라니 말이 되나요? 6억원 이하에는 절대 내놓지 맙시다”, “OO부동산이 올린 26평 4억5000만원 매물을 허위매물로 신고합시다”는 등 입주민들이 온라인 카페나 단체 대화방을 통해 담합을 시도하면서 매물은 사라지고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는 뛰고 있다.
집값 상승기에는 호가 담합이 늘 문제가 됐지만 최근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것은 결국 정부 규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수요 억제 일변도 대책으로 매물이 잠기면서 매도자 우위시장을 형성했고 담합을 통한 호가 띄우기가 먹히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진화하는 집값 담합… ‘손쉽고 빠르게’
내 집을 더 높은 가격에 팔고 싶어 하는 것은 집주인의 기본 심리이다. 그 가격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거래가 성사되는 것이고,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가격을 낮추기 마련이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 가격이 적정가다.
집값 담합은 사실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 호황기마다 이슈가 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아파트 주민이 단지 입구나 엘리베이터에 특정 가격 이하로는 팔지 말자는 유인물을 붙이거나 부녀회에서 가격 하한선을 정하는 식으로 담합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카페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정보 유통과 공유가 더 용이해지면서 담합도 더 빈번하고 손쉽게 이뤄지고 있다. 유인물을 붙이는 식의 고전적인 방법에 더해 단체 대화방에서 가격을 올려서 내놓자고 논의하거나 정상 매물을 인터넷 포털에 올린 중개업소에 장사를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저가 매물을 올린 중개업소 블랙리스트를 입주민 카페를 통해 공유하거나 낮은 가격의 매물을 허위매물로 신고하는 등 방법도 점차 진화하고 있다. 최근 위례신도시에서는 지역 중개업소들이 매물 올릴 때 해당 층수 표기와 집주인 인증을 하라는 주민 요구를 거부하자 단체 대화방을 통해 직거래 사이트나 다른 지역 부동산에 매도를 의뢰하자며 단체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원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면서 불법적인 가격 만들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해졌다”며 “이런 식의 담합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씨가 마른 매물…매도자 우위시장이라 담합 가능
실제 현재 서울은 유례 없는 매도자 우위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9월 첫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171.6로, 지수 집계를 시작한 2003년 7월 이후 최고치다. 그만큼 매수자가 더 많아 매도자(집주인)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뜻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가격 담합은 우리 집값은 왜 안 오르나 하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저평가됐다는 인식에서 시작되는데, 요즘은 많이 오른 인기지역에서도 담합이 벌어지고 있다”며 “시장이 왜곡된 상태이 있기 때문에 담합이 먹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 담합을 막기 위해서는 실거래 신고 기간을 단축해 실제 거래정보를 좀 더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거나, 담합 사실이 적발되면 처벌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집값 상승이 이어지는 한 가격 담합을 근절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시장 참여자들이 서로 집값을 논의할만한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담합 행위도 은밀하고 집요하게 이뤄져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며 “파파라치를 통한 신고포상제를 이용하거나 실거래 신고를 30일로 줄여서 일반인이 시세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시간 차를 줄이는 방안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