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17.파운드 약세의 양면

외국여행객들은 환호ㆍ영국인들은 한숨
  • 등록 2017-12-04 오전 6:00:00

    수정 2017-12-04 오전 6:00:00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해외여행이나 공부 등을 위해 한국 돈을 현지 통화로 바꿔 해외에서 머무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여행 가는 곳의 통화에 비해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강하면 얼마나 좋은지요. 반대로 여행 가는 곳의 통화가 원화 가치에 비해 강세면 여행의 질이 얼마나 팍팍해지는지 말입니다.

영국 파운드화를 예로 들어볼까요? 파운드화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1파운드당 2449.34원까지 치솟았으며 약 2년전인 2015년 가을께만 해도 1파운드당 1900원대를 오갔었죠. 지난 5년간 1달러당 1000~1200원대를 오갔으며 1유로당 1150~1400원대에서 움직인 것과 비교하면 파운드화는 주요 경제국 통화 가운데 확실히 달러나 유로화에 비해 비싼 통화로 한국인들에게 각인됐습니다. 그런 파운드화가 작년 6월 영국이 국민 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Brexit·브렉시트)를 결정하면서 운명이 바뀝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파운드 통화에 대한 투자 매력이 떨어지면서 파운드화는 달러, 유로화 등 주요 통화 대비 가치가 급락하기 시작합니다. 원화 대비로는 작년 10월 1파운드당 1374원대까지 내려갔다가 10월 현재 1500원대 중반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파운드화 대비 원화 가치가 몇년전과 비교해 확실히 커졌죠.

영국 국회의사당 배경으로 사진 찍는 관광객들 사진=이민정
여행하는 현지 통화보다 원화가치가 높으면 여행객들에게는 이득입니다.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여행한다는 일종의 뿌듯함도 느낍니다. 현재 웬만한 영국 런던 카페의 카페라떼 일반 사이즈가 3파운드 정도니 2년전 1파운드당 약 1900원일 때에는 원화로 5700원에 사 먹던 라떼를 현재 환율인 1파운드당 약 1500원으로 계산하면 약 4500원에 맛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구매하는 상품의 가격이 높을수록 환율로 인한 차이가 큽니다. 런던 시내 그렇게 좋지도 넓지도 않은 평균 호텔 더블룸 평균 가격이 1박에 180파운드 정도 합니다. 1파운드당 1900원으로 치면 34만2000원, 1500원으로 치면 27만원 입니다. 지금 런던을 여행하면 2년 전보다 호텔 1박 투숙 비용으로 약 7만원 정도를 아낄 수 있죠. 사실 런던은 호텔 등 투숙 비용이나 전철과 택시 등 교통비, 외식비, 서비스비가 워낙 다른 여행지와 비교해 비싸서 이렇게 원화 대비 환율이 떨어졌다고 해서 절대로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도 환율이 높은 것보다는 이렇게 낮아진 게 여행객들에게는 이득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죠.

그래서 파운드 약세가 몰고 온 큰 변화 가운데 하나가 전 세계 여행객들을 런던으로 불러들인 겁니다. 과거보다 영국 여행이 만만해지자 전 세계 관광객들이 영국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에만 3500만명이 영국에 와 약 22억파운드(약 3조2108억원)를 썼습니다. 외국 여행객 가운데 대다수는 영국 가운데서도 볼거리가 몰려 있는 런던으로 옵니다. 영국 여왕이 사는 버킹엄 궁전, 빅벤으로 알려진 영국국회의사당 앞에 가면 영어보다 스페인어, 불어, 독어 등 외국어가 더 많이 들립니다. 그래서 브렉시트가 여러 불확실성을 몰고 왔지만 영국 관광산업만은 제2의 붐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죠.

반면 파운드 가치가 떨어지면 영국인들이 해외로 여행가는 비용은 비싸집니다. 영국인들은 특히나 초봄, 가을, 겨울께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를 피해 주로 스페인, 프랑스 남부 등 따뜻한 유럽으로 휴가를 많이 갑니다. 이들 국가는 유로화를 쓰죠. 지난 8월말 파운드화는 1파운드당 1.0981유로를 찍으면서 유로화 대비 가치가 10개월래 최저치로 떨어졌습니다. 1파운드로 사는 유로화가 그만큼 적어졌다는 뜻입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유럽 등 해외로 여행간 영국인들은 720만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 밖에 증가하지 않았는데 이들이 쓴 돈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나 뛴 46억파운드였습니다.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해외여행에서 과거와 똑같은 질의 여행을 누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파운드화를 여행지 통화로 바꿔 써야 했기 때문이죠.

특히 유로화 대비 파운드 가치는 앞으로 더욱 하락해 1파운드=1유로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유로화를 쓰는 국가들의 모임인 유로존은 건실한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유로존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고자 시장에 엄청나게 쏟아부었던 돈을 금리인상 등으로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시장에 풀린 유로화가 줄어들면 유로화 가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커지고 금리까지 오르면 통화 매력 상승에 투자 수요가 높아지면서 통화 가치가 더욱 오르는 측면이 있습니다. 브렉시트로 영국 경제에 불확실성이 가득하면서 파운드화는 상승할 호재가 별로 없습니다. 이에 따라 유로화 가치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파운드화 가치는 떨어지게 됩니다. 영국인들의 유럽 여행이 앞으로 더욱 팍팍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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