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21기 단계적 감축 확정..野 "갈등의 씨앗 될 것"

文정부 국무회의, '탈원전 로드맵' 확정
신규 6기 백지화, 노후 14기 연장 불허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내달 시점 검토
野 반발..일방통행, 경제적 손실 우려
  • 등록 2017-10-25 오전 12:03:14

    수정 2017-10-25 오전 12:03:14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김상윤 기자] 정부가 신규 원전 6기 건설을 백지화하고 노후 원전 14기의 수명 연장을 불허하기로 했다. 월성 1호기도 조기에 폐쇄하기로 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재개하되 나머지 원전에 대해선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야당은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한 일방통행식 결정이라고 반발하고 나서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는 24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45회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정책 권고에 따른 정부 방침을 확정하고 이에 대한 후속조치와 보완대책을 담은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을 심의·의결했다. 탈원전 로드맵에는 △원전의 단계적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 △지역·산업 보완대책이 담겼다.

文 대통령 “탈원전 공감대 확인”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로드맵에 따르면 21개 원전이 단계적으로 감축된다.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 건설 장소·이름이 미정인 2개 호기 등 원전 6기는 백지화 된다. 고리 2~4호기, 월성 2~4호기, 한빛 1~4호기, 한울 1~4호기 등 노후 원전 14기의 수명연장은 금지된다. 월성 1호기는 시점은 현재 확정하지 않았지만 조기에 폐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원전은 올해 24기에서 2022년 28기, 2031년 18기, 2038년 14기 등으로 단계적으로 감축된다. 이러한 원전의 단계적 감축 방안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반영될 예정이다. 월성 1호기 등 구체적인 폐쇄 시점은 내달 발표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맞춰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는 원전 축소로 감소하는 발전량을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대체 공급하기로 했다. 현재 7% 수준인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연내 발표하기로 했다. 동남권 원전해체연구소를 설립하기 위한 연구용역, 원전 수출을 위한 사우디·체코·영국과의 정상회담 및 장관급 회담 등 지역·산업 보완대책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밝힌 것은 신고리 5·6호기를 건설하더라도 탈원전 정책은 별개로 추진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시민참여단 53.2%는 ‘원전 축소’ 의견을 냈다. 이에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브리핑에서 “(공론화위가) 탈원전 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정부에 권고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우리가 가야 할 탈원전, 탈석탄,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의미 있는 성과”라며 “정부는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후속조치 과정에서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충분히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집중된 노후 원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줄일지 계획을 수립하는 게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노조 “원전 축소 권고, 수용 불가”

한국수력원자력 노조가 지난 7월15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원전 사거리에서 집회를 열고 “원자력 산업을 스스로 부정하는 반원전 이사진의 퇴진 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한다”며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에 반대했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 같은 탈원전 정책에 대해 야당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올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는 ‘원전 청문회’라고 불릴 정도로 여야 간 신경전이 거셌다. 국민의당이 건설 재개라는 공론화위 결과를 놓고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할 정도로 격앙된 상태다.

원전 찬성 측에서는 공론화위가 탈원전을 권고했다고 인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공론화위가 애초 밝힌 목표와 달리 탈원전 정책을 건의했지만 이는 자격이 없는 것”이라며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발표한 것은 ‘짜고 치는 탈원전’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수력원자력 노조도 “원전 축소 권고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향후 탈원전 과정에서 비용 문제도 풀기 어려운 숙제다. 산업부는 현재까지 탈원전에 따른 정확한 보상 비용, 향후 경제적 손실 예상치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은 원전 4기의 매몰비용(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만 9955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 비용을 한수원이나 국민이 결국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여당이 강행할수록 갈등만 커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노후원전의 수명을 금지하는 조치는 2038년까지 진행되는 것이어서, 만약 정권이 바뀌면 탈원전 정책이 백지화가 될 수도 있다.

백 장관은 “탈원전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흔들림 없이 탈원전 로드맵을 시행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가 대계인 에너지 정책은 국민적 합의가 우선 필요하다” 며 “일방적인 행태로 갈 경우 국민이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이고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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