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12월21일자 이데일리신문 16~17면에 게재됐습니다.[이데일리 하수정 기자] 활짝 웃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최초의 민간 출신 금융부처 수장, 350조원 국민재산의 관리책임자. 결코 가벼울 수 없고 늘 평탄할 수 없는 자리에 앉았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거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미스터 스마일,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말이다. 그는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을 좌우명으로 삼는다 했다.
그러나 그를 제대로 겪어본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다`고 한다. 그 스스로도 "매우 강성"이라고 인정했다. 2001년 말 우리금융 부회장 시절 우리은행에 분할 합병된 평화은행 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이사회 당시 문짝이 깨지고 칼과 시너를 든 사람들이 난입했다. 온갖 위협이 있었지만 내 위치를 흐트러뜨린 적 없다. 나는 우리금융 노조가 가장 피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국민연금 노조에게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닌 듯 싶다. 3년동안 긴 마라톤 협상을 끝에 드디어 지난주 공단과 노조는 임단협을 체결했고 복지관련 공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성과연봉제를 3급 부장직까지 확대했다.
`외유내강`의 모습으로 다져진 전 이사장의 인생 역시 크고 작은 시련이 없지 않았다. 어릴 적 중학교 입시에서 낙방해 인생의 첫 실패를 경험했다. 이듬해 아예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입학했다. 최연소 고교입학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초대 금융위원장에 화려하게 발탁된 이후에도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 취임한 해에 사상 초유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직면했다. 민간 출신이 관료조직을 장악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들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위기를 맞아 좌절하면 그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를 기회로 삼고자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도전하면 반드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이사장의 집무실에 걸린 두 개의 액자가 눈에 띄었다. 20년동안 그의 사무실마다 따라다녔던 액자다. 인위고(忍爲高), 겸즉진(謙卽進)이라는 공자 말씀이 적혀있다. 전 이사장은 "세계은행에 있을 당시 첫 중국 출장에서 베이징 국자감에 들러 기념으로 받은 것"이라면서 "인내하는 자가 높임을 받고, 겸손한 자가 나아간다는 인위고 겸즉진의 말을 항상 되새긴다"고 말했다. 나이를 먹을 수록 더 열정적으로 일하려한다는 전 이사장. 진갑을 넘긴 나이이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 해야할 일이 많아 보였다.
-고령화 가속화로 국민연금 기금 고갈 속도도 빨라질 수 밖에 없다. 중장기 대안은.
▲ 5년마다 국민연금 지속 가능성을 계산하는 데 오는 2013년에 시행되는 제3차 재정계산시 장기 재정안정화 방안을 검토할 것이다. 앞으로 제도 개선이 된다면 `덜 받고 더 내는` 형태보다는 `그대로 받고 더 내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장기적인 재정안정에 매우 중요하다. 운용수익률을 1%포인트만 제고하면 연금 소진시기를 9년 연장할 수 있고 2%포인트 높이면 현 체제 하에서 보험료 올리지 않고도 시스템을 끌고 갈수 있다.
-내년 경기를 어떻게 전망하나.
▲ 상반기보다는 하반기가 나아지겠지만 전체적으로 `슬로우 리커버리(완만한 회복)`가 될 것이다. 시장 변동성은 상당히 클 것이다. 유로존의 이해관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정치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가장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독일 입장에서 유로 시스템 붕괴를 간과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 컨센서스다. 분명한 것은 이 같은 시장 여건 하에서는 경제 정책 운용하는 데 있어 안정 기조에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재정의 생산적 역할 부분이 관심 사안이다. 경기가 경착륙하지 않도록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국민연금은 긴 안목에서 투자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투자 다변화 전략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해외에서 달러를 직접 조달하는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올해 이니셔티브를 쥐고 유익한 발걸음을 뗐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국민연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기금이 외화계좌를 보유하고 운용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이는 외환시장의 변동성에 관계없이 해외투자를 정상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것이다. 해외 투자기회가 있는데 충분한 달러를 국내시장에서 조달하기 어렵다. 원화절하 압박이 커지기 때문이다. 외화계좌를 보유하게 되면, 해외투자를 위한 달러를 국내 외환시장이 아닌 국외에서 조달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금융위기시에는 외환시장의 안정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한국투자공사(KIC)에서는 국민연금 자산 운용을 일부 맡겨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 국민연금기금은 가입자 노후생활 안정을 위한 책임준비금을 투자·관리하는 공적연금인 반면, KIC는 국가의 축적된 부를 운용하는국부펀드다. 포트폴리오 구성과 투자행태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 국민연금기금은 해외투자를 위한 자체 운용전문조직체계를 갖고 있다. 지난 6월말에 뉴욕사무소를 설치했다. 내년에도 런던사무소를 개설할 예정이다. 해외투자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의 주요 기업 지분보유비율이 높아지면서 주주권 행사에 나서야 한다는 시각이 있는데.
▲ 주주가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국민 재산 맡아 관리하는 수탁자의 의무이기도 하다. 기금이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그 목적은 투자기업의 가치를 장기적 관점에서 높이기 위한 것이다. 해당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할 이유가 없다. 우려하는 시각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관치와 경영개입 수단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때문에 상당한 공론화를 이뤄나가는 노력을 해야한다.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가야할 것이다.
-유로존에서 은행 등이 자본확충을 위해 많은 매물들을 내놓을 것으로 보이는 데 관심이 있나.
▲재정위기를 겪는 국가에서 국가신용보다 더 튼실한 기업이나 자산들이 매물로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유심히 살피고 있다. 각국 정부나 레버리지가 높아진 해외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안정적인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고, 핵심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난 2009년 영국 HSBC 본사 빌딩을 1조5000억원에 매입했는데, 공실 하나없이 안정적인 임대수익이 들어오고 있다. 부동산 투자는 임대료를 매년 높여 인플레이션 헤지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