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애널리스트들이여,e메일을 조심하라!

  • 등록 2002-04-15 오전 8:03:26

    수정 2002-04-15 오전 8:03:26

[뉴욕=edaily 이의철특파원] 지난 주 월가의 최대 관심사(증시나 경제에 관련된 것이 아닌 증권가 뉴스로)는 뉴욕 검찰청과 메릴린치간의 공방이었다. 뉴욕 법원이 메릴린치에게 "리포트 작성 방식을 바꿀 것"을 요구한 데 이어 뉴욕 검찰청이 리포트 작성관행에 대한 조사를 대형 증권사로까지 확대키로 하면서 월가는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분위기다.그도 그럴 것이 검찰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고유 업무인 "투자리포트"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과 메릴린치간의 1차전에선 일단 검찰이 판정승을 거둔 듯하다.메릴린치는 법원에 제출키로 한 "적절한 조치"를 다음 주말까지 연장하기로 검찰과 합의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과거처럼 "유야무야"로 묻혀지긴 힘든 데 이는 양측의 "명분"과 "밥줄"이 달려있어 타협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뉴욕 검찰측은 10개월 동안이나 이를 조사했다는 "명예"와 "명분"을 걸고 있고,메릴린치를 포함한 대형증권사들은 그야말로 "밥줄"이 달려있다. 대변인 등을 통해서 나온 말을 종합해 검찰의 시각을 정리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첫째,애널리스트들은 고객의 이익보다는 자신이 속한 회사의 이익을 위해 투자 리포트를 작성한다. 둘째,양측의 이해가 상충되면 과감히 고객을 속일 수 있다.(이것은 사기행위라고 검찰은 보고있다). 셋째,메릴린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증권회사들이 모두 다 그렇게 한다. 따라서 검찰이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조사를 메릴린치 뿐만 아니라 살로만스미스바니 UBS워버그 등 대형증권사로까지 확대키로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과연 어떻게 이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즉 애널리스트들이 "투자자들을 배신했다"는 증거가 과연 있나?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e메일이다. 검찰은 메릴린치내 수만통의 e메일을 샅샅이 조사한 끝에 헨리 블로짓 등의 애널리스트들이 "사적으로" 교환한 e메일에서 이같은 단서를 잡았다는 것이다. 즉 헨리 블로짓 등은 "매수"추천한 종목에 대해서조차 자신의 동료들에겐 스스럼 없이 "쓰레기 같은 종목"이라든지 "하찮은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이는 "본심 따로,리포트 따로"의 증거이니 사기행위라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는 또 있다.고투닷컴(goto.com)의 CFO와 메릴린치의 애널리스트가 교환한 e메일을 조사한 결과 "보다 높은" 등급을 고투닷컴에 부여해주는 대신 IPO업무를 메릴린치에 맡길 것을 넌지시 시사하는 내용도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메릴린치는 이에 대해 "검찰이 행간을 잘못 읽었다"고 주장한다.즉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e메일의) 몇몇 단어에 집착하다보니 전체적으로 잘못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검찰이 옳으냐 메릴린치가 설득력이 있느냐를 따지는 것은 사실 능력 밖이다.그러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검찰의 e메일에 대한 조사가 법원에 의해 증거능력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헨리 블로짓과 그 동료들은 "필화(筆禍)"나 "설화(舌禍)"가 아닌 "e화(e禍)"를 입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하기야 우리에게도 e메일로 인한 e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외국계 증권회사의 20대 한국계 애널리스트가 미국의 동료들에게 "한국에 와서 황제처럼 살고 있다"는 내용으로 보낸 e메일이 공개되면서 "황제에서 일반인으로 강등됐고",삼성전자 소속의 연구원이 개인적인 자료를 e메일로 보냈다고 산업 스파이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일도 있었다.휴렛팩커드의 피오리나는 최근 컴팩과의 합병 주총때 작전지시를 "보이스 메일"로 남겼다가 이것이 언론에 유출되는 바람에 때아닌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잠깐 화제를 돌려,정치문제로 들어가면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안단속이다. 국회의원의 경우 심지어 "돈을 받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또 고위관료의 경우 "정책의 실패"는 눈감아 줄 수 있지만 집안단속에 실패하면 용서가 안된다.아들이나 부인을 잘못 가르쳐(?) 중도 낙마한 정치인과 고위관료가 어디 한둘인가? 이제 여기에 또 하나의 사례를 추가할 수 있겠다.무릇 애널리스트들은 한국이건 미국이건 반드시 "e메일"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가지 사족을 붙인다면 헨리 블로짓에 관한 것이다.메릴린치의 헨리 블로짓은 한때 인터넷의 황제로까지 추앙받던 인물이다.그가 추천하는 인터넷 종목은 급등의 보증수표였으며 그 자신 지난해 주식투자를 통해 1200만달러를 벌었다. 그러나 지금은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라 월가의 가장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으니 "사람 팔자 알수 없다"는 옛 말이 그르지 않다.어쨋든 이번 검찰의 수사가 월가의 공정성을 한차원 높인다면 헨리 블로짓의 공로도 적지 않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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