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송주오 기자] 정부가 최대 290만명의 서민·소상공인의 연체기록을 삭제하는 이른바 ‘신용사면’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여파 등 대외적인 요건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정부 측 주장을 옹호하는 반면 신용사면 추진으로 신용점수 체계의 왜곡이 발생하고 전체 금융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 신용회복지원을 위한 금융권 협약식’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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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연합회 등 전 금융업권 협회와 농협중앙회 등 상호금융중앙회, 한국신용정보원, 12개 신용정보회사가 모여 ‘서민·소상공인 신용회복지원을 위한 금융권 공동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개인과 개인사업자가 지난 2021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발생한 2000만원 이하의 채무를 오는 5월까지 전액 상환하면 해당 채무자의 연체 이력 정보 공유·활용을 제한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 기간 연체 발생자는 296만명으로 이 가운데 2000만원 이하 연체자는 290만명으로 추산했다. 통상 금융권에서는 3개월 이상 연체가 발생하면 신용정보원에 최장 1년간 연체기록을 보존하고 금융기관과 신용평가회사(CB사)에 이를 공유해 최장 5년간 활용한다. 이런 탓에 연체 차주는 신용카드 발급, 신규 대출 등 금융거래에서 불이익을 받아왔다.
|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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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조치로 250만명의 신용점수(신용평가사 NICE 기준)가 평균 39점 상승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15만여명은 카드 발급 기준 최저신용점수(645점)를 충족할 것으로 보이고 25만명가량은 은행권 신규 대출자 평균 신용점수(863점)를 초과해 대출 접근성도 향상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의 신용사면 추진과 관련 전문가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찬성하는 측은 전액상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금융질서와 형평성 문제를 최소화했다고 강조했다. 원대식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자기가 열심히 일했음에도 외부적인 요인(코로나19)에 의해 신용에 문제가 생겼다면 이번에 기회를 주는 게 맞다”며 “연체금액 상환 후 5년이 지나면 연체기록을 삭제해주는 제도가 있다. 신용질서 훼손 등의 지적은 논리적인 비약이다”고 말했다.
김용원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여파로 자영업자가 어려워졌는데 신용사면이 연체를 다 상환한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연체기록을 삭제하는 만큼 형평성 논란은 적다”고 했다.
신용사면에 부정적인 뜻을 나타내는 전문가들은 신용점수 체계의 훼손 등을 이유로 꼽았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체기록을 삭제하면 신용점수가 왜곡된다. 신용점수의 왜곡이 발생하면 신용점수의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석 교수는 “왜곡된 신용점수를 기반으로 대출을 실행하고 다시 연체가 발생해 금융기관으로 전이되면 가산금리가 상승한다. 이렇게 되면 모든 금융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4월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전과 달리 2000만원 이하의 소액 연체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큰 부담은 안 된다”며 “선거를 앞두고 있어 총선용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