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상승 속 수입산까지 급증…철강업계 '사면초가'

■스페셜 리포트-이중고 겪는 철강업계
日·中, 엔저·저가로 물량 공세…중국 철강재 34.5%↑
건설경기 침체에도 中형강 45%↑…선재는 중국산 잠식
원자잿값 상승해도 내수 부진에 제품 가격 인상 한계
"부적합 제품 모니터링 강화…경쟁력으로 대응해야"
  • 등록 2023-10-30 오전 5:30:01

    수정 2023-10-30 오전 5:30:01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국내 철강산업이 지속하는 내수 부진과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해외 철강재 수입까지 늘어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최근 원재료 가격 상승이 계속되고 있지만 전방산업 수요 부진 영향으로 제품 가격 인상도 쉽지 않은데다 일본과 중국산 철강재의 국내 유입이 크게 늘어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엔低·저가 공세…밀려오는 日·中 철강재

29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중국에서 수입된 철강재는 665만t으로 전년 같은 기간(494만t)대비 34.5% 증가했다. 시장에선 중국의 내수 부진이 계속되면서 자국 내 소화되지 못한 물량이 밀어내기 수출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철강재 과잉 공급을 우려한 중국 정부가 감산에 나섰지만 아직 이렇다 할 가시적 효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의 올해 1~9월 누적 조강생산량은 7억9510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엔화 약세를 앞세운 일본산 철강재 수입도 크게 늘었다. 엔저 현상으로 고품질 일본산 제품에 대한 경쟁력이 높아진 영향이다. 올해 1~9월 일본산 수입 철강재는 434만t으로 전년 같은 기간(403만t)보다 8%가량 늘었다. 특히 열연강판의 경우 같은 기간 176만t이 유입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수입량(170만t)을 웃돈다. 미국이 긴축 정책을 펴는 가운데 일본은 금융완화 정책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엔화 약세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 일본산 철강재 수입도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건설경기 침체에도 중국산 형강 45%↑

업황이 비교적 양호한 조선과 자동차 부문을 중심으로 수입산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 배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중후판의 경우 1~9월 중국 수입산이 95만t으로 전년(58만t)보다 64.5% 늘었다. 지난해부터 엔화 약세로 수입 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일본산을 최근에 저가 중국산이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산 수입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아연도강판의 경우 최근 건설용 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수요 증가로 중국산과 일본산 모두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각각 88만t, 81만t이 수입되면서 전년대비 36%, 23%씩 증가했다.

문제는 전·후방 산업이 위축된 부문에서도 수입산 철강재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건축물 철골구조 등에 주로 쓰이는 H형강의 경우 위축된 건설 수요로 국내 생산이 10% 이상 감소했지만 상반기 수입은 25만t으로 1% 미만 줄어드는데 그쳤다. 올들어 지난 9월까지 국내로 들어온 중국산 형강류는 26만t으로 전년(18만t) 대비 45.7%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수익성 개선을 위해 수입선을 확대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된 측면이 있다”며 “다만 H형강 등 건설용 강재의 경우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부적합한 수입산 철강재가 유입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원자잿값 상승·전기료↑ 우려…철강업계 ‘울상’

이에 따라 국내 철강업계의 고심은 커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은 상승하고 있지만 내수 시장 부진은 물론, 수입산과의 가격 경쟁으로 쉽사리 제품 가격을 인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중국산 철광석 수입 가격은 톤(t)당 120달러를 나타냈다. 철광석 가격은 올해 3월 t당 133.1달러로 연중 최고점을 기록한 이후 하향 안정화 추세를 나타내다가 지난 8월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제철용 원료탄 역시 348달러를 기록하며 7월(221.5달러) 대비 60%가량 상승했다.

아울러 4분기 전기료 인상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 3분기 전기료를 동결한 바 있어 올해 4분기 전기료 인상을 강행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전기료가 오르면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 전기로 사용 비중이 높은 업체들의 원가 부담이 커진다. 업계는 전기료가 1㎾h당 1원 인상되면 연간 2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은 현재 열연 강판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잖다.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인상 폭과 시기에 대해 검토 중”이라며 “그러나 내수시장이 부진해 전반적인 시황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최근 국내 열연강판은 t당 90만~92만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반면 수입 유통가는 83만원에 불과하다.

“수입산 모니터링 강화…경쟁력 강화 지속해야”

국내 철강사들의 경영 환경은 날로 악화하고 있지만 당장 늘어나는 수입 철강재를 막을 방도는 마땅치 않다. 철강이 주요 수출 품목 중 하나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과도한 무역 장벽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반덤핑 관세를 매기기 위해서는 자국 산업에 명백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국산 H형강에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2014년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이후 저품질 H형강 문제가 불거진 영향이 컸다. 2015년 정부는 국내에 수입되는 중국산 H형강에 대해 최대 33%에 달하는 덤핑방지관세 부과를 결정했고, 2021년 재연장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 수입 철강재의 국내 시장 확대 움직임에 대해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국 등 저가 철강재 수입 비중이 24%까지 치솟았던 2014~2016년 당시 철강 상장사의 영업이익률이 5%대로 하락했다. 수입산 증가는 국내 업체들의 내수 기반을 위협하고 국내 철강사 수익성 악화로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나아가 자칫 부적합 제품의 유통 증가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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