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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강타하는 인플레이션 충격은 예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지난 2010년대 들어 줄곧 정책 목표치(2.0%)를 하회하면서 시장은 저물가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올해 1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6.8%. 1982년 6월(7.2%) 이후 거의 4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주택 임대료, 기름값, 식음료비, 교통비 등의 살인적인 폭등이 이 숫자 안에 녹아 있다. 연봉이 무려 7% 올라도 실제 구매력은 사실상 제자리라는 의미와 같다.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나타난 셈이다.
미국의 현실은 곧 세계의 현실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35개국(선진국 16개국·신흥국 19개국) 중 28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를 뛰어넘었다. 한국의 경우 11월 3.8%까지 치솟았다. 그렇다면 이런 인플레는 언제쯤 끝날까. 당장 해야 할 조치는 무엇일까.
“미국 CPI 상승률은 거의 틀림없이 7%대까지 오를 겁니다. 더 늦기 전에 인플레를 억제하는 볼커식(式) 긴축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로버트 배로(67)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13일(현지시간) 본지에 보낸 인플레 관련 기고(‘My thoughts on inflation’)를 통해 미국 당국의 정책 오류를 성토했다. 그는 거의 매년 노벨경제학상 후보군에 오르는 석학이다. 경제학 전문 웹사이트 ‘RePEc’에 따르면 배로 교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이코노미스트’ 5위에 올라 있다. 그의 뒤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빅샷’들이 즐비하다.
“더 늦기 전에 볼커式 긴축 전환해야”
그는 “파월 의장은 인플레의 원인을 두고 일시적인 공급망 병목 현상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며 “이에 따르면 연준은 그저 소극적인 대리인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배로 교수는 그러면서 1979년 8월~1987년 8월 연준 의장으로 일한 폴 볼커를 거론했다. 볼커 취임 당시 CPI 상승률은 11.8%에 달했다. 이에 볼커는 1981년 기준금리를 살인적인 수준인 21%까지 인상했으며, 그 이후 물가는 2~4%대로 안정화했다.
“볼커가 1980년대 초 높은 인플레를 끝내는 과정에서 경기 침체가 올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였을 때 ‘영웅’으로 여겨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그의 물가 통제가 (경제가 성장하는 데) 지속적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지위가 올라갔지요.”
배로 교수는 “파월 의장은 볼커와 정반대의 평판을 얻을 위험에 처해 있다”며 “높은 기대인플레가 고착화한다면 그를 향한 비판은 점차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거기에 도달하기 전에 하루빨리 볼커와 같은 긴축 통화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보다 더 가파르게, 여러 차례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가격 통제책, 인플레보다 더 큰 피해”
그는 “큰 정부가 경제 발전을 저해할 것으로 우려한다”며 “어떤 면에서는 서유럽의 사회주의를 모방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더 나아가 바이든 대통령이 물가 폭등의 책임을 기업으로 돌리려고 하는 움직임까지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정유 회사들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정유 회사들이 기름값을 인위적으로 높여 불법적인 이익을 취하고 있는지 살펴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무리수’ ‘미봉책’ 비판을 받았다. 정책당국이 초인플레를 부추겨놓고 다른 곳으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배로 교수는 이에 대해 “특히 우려되는 건 물가 상승의 책임을 기업으로 돌리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움직임”이라며 “인플레 상승보다 경제에 훨씬 많은 피해를 입히는 건 가격 통제”라고 질타했다.
로버트 배로 교수는…
△1944년 미국 뉴욕 출생 △캘리포니아공대 물리학 학사 △하버드대 경제학 석·박사 △미국경제학회 부회장 △세계은행(WB) 자문역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 △미국기업연구소(AEI) 방문연구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