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까지 걸고 하는 극한의 마피아 게임’ (LGTWINSTV, 3월 31일)
‘이승진 선수에게 나무위키를 읽혀보았습니다...’ (BearSpotv베어스포티비, 4월 15일)
예능 프로그램에서 볼 법한 기획과 제목이지만 해당 영상이 올라온 곳은 프로스포츠 구단 공식 유튜브 계정이다.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속 유튜브 채널을 통한 ‘비대면 마케팅’에 열중하고 있다. 관중 입장이 제한되는 가운데 영상 소비에 익숙한 M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사로잡기에 나선 것.
브이로그(V-log, 일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콘텐츠)를 비롯해 △미니 게임 △실시간 방송 등 예능 못지않은 다양한 기획을 뽐낸다.
구단 공식 채널의 주 시청 연령층인 2030세대는 경기가 없는 날에도 영상을 보며 팬심을 뽐내고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영상을 접한 뒤 관심 없던 스포츠에 ‘입덕(새롭게 팬이 되는 일)’했다는 경험담도 나오고 있다.
경기장 밖 ‘뒷이야기’ 가장 궁금한 팬들
세부 운영 방식엔 차이가 있지만 유튜브 마케팅을 위해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내세우는 콘텐츠는 △경기장 밖 뒷이야기 △선수를 주인공으로 한 예능형 게임 △구단과 팬이 동시에 참여하는 실시간 방송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며 선수·구단과의 소통에 목마른 팬들의 욕구를 비대면으로나마 채우기 위한 기획이다.
‘뒷이야기 영상’은 비시즌 훈련 장면·경기 직후 퇴근길 인터뷰 등 팬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을 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전달한다. 라커룸이나 숙소까지 카메라가 동행하기도 한다. 팬들의 궁금증을 구단이 앞장서 해소해주는 것.
최근 프로축구 성남FC는 구단 유튜브 채널에 올린 ‘발차기 영상’으로 유쾌한 이목을 끌었다. 김남일 감독이 골을 넣고 유니폼을 벗는 세레모니를 하다 퇴장을 당한 외국인 선수 뮬리치의 엉덩이를 장난스럽게 걷어차는 모습이 담겼기 때문이다.
청년층에서 유행하는 콘텐츠를 활용한 나무위키 읽기·MBTI 검사·밸런스 게임 등 예능형 기획도 인기다. 감독과 선수들이 직접 참여해 만드는 편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핵심이다. 팬들에게 즐거움과 함께 ‘팀 분위기가 좋다’는 인식을 제공한다.
즉시 질의응답이 가능한 실시간 방송 또한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비교해 유튜브만이 갖는 장점이다. 구단의 입장을 전달함과 동시에 팬들의 생생한 의견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LG 트윈스는 ‘엘튜브는 소통을 하고싶어서’라는 제목으로 차명석 단장이 월 1회 실시간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선수의 근황이나 트레이드 등 팀과 관련된 팬들의 우려를 단장이 직접 해소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프로농구 BNK 썸은 지난달 18일 신임 감독 발표를 유튜브 실시간 방송으로 진행해 화제가 됐다. 구단 관계자는 “유튜브 채널을 홍보하고자 하는 취지와 신임 감독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려는 목적이 있었다”며 “궁금한 내용을 바로 질의응답할 수 있었던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구단 “유튜브 통해 바깥에 있는 팬들도 끌어올 것”
구단들은 유튜브 채널의 주 시청 연령대가 2030세대라고 밝혔다. 유튜브를 이용해 신규 팬 유입을 노리겠다는 목표도 전했다.
한국프로야구(KBO)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구독자 수(21년 4월 기준 약 15만명)를 보유한 두산 베어스 홍보팀은 “(코로나19로) 팬들이 구장에 많이 못 오니까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선수들을 더 볼 수 있게끔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자료를 보면 시청자 중 2030세대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고 말했다.
성남FC 홍보팀은 “이번 발차기 영상처럼 축구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알고리즘을 통해 구단 영상이 노출될 때가 있다”며 “축구 외적인 팬들도 끌어오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 연령층에 대해선 “지난 한 달을 기준으로 25~34세가 38.7%로 1위”라고 밝혔다.
스포츠와 연관이 적더라도 콘텐츠를 앞세운 영상으로 구단 채널의 경쟁력을 키우겠다고도 말했다.
20대 “유튜브 보며 '선수→구단→스포츠'로 관심 확장”
20대는 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각 스포츠에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전했다. 관중 수용이 어려워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비대면 디지털 홍보를 강화한 구단들의 전략이 적중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상으로 선수 개인의 입체적인 모습이 드러난 점도 신규 팬 유입에 영향을 미쳤다.
‘추천 영상 목록’에 뜬 공식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GS칼텍스 서울Kixx의 팬이 됐다는 모현진(25·여)씨는 배구보다 선수의 개인적인 모습에 먼저 흥미를 느꼈다고 밝혔다.
모씨는 “‘소영선배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선수의 팀 내 역할을 자연스럽게 담아 낸 영상을 보고 (그 선수가) 마치 언니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주위 또래들을 보면 특정 선수를 ‘덕질(어떤 분야·인물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일)’한 뒤 이어서 소속팀과 배구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선수 개인에 대한 애정이 구단·스포츠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된다는 것.
모씨는 “최근 구단들이 팬들의 이러한 경향을 읽고 다채로운 기획을 통해 선수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하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새롭게 유입된 팬뿐만 아니라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는 기존 팬층도 마케팅을 강화하려는 구단의 움직임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하치윤(24·남)씨는 “선수 직캠(올리는 사람이 직접 찍은 영상)이나 용병 소개 영상이 특정 선수의 팬덤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SSG 랜더스 선수들끼리 훈련 현장에서 친목을 도모하는 영상을 봤는데, 응원하는 팀이 아닌데도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내용이 재밌어서 (채널에) 계속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한편 하씨는 “유튜브 채널을 보면 (인기 있는) 특정 선수에게만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비주전 선수들의 야구 얘기나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낸 영상도 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유튜브 채널 내 새로운 시도가 많아지며 경기 요약 영상 등 기존 콘텐츠의 질이 동반 상승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LG 트윈스의 ‘LGTWINSTV’를 구독하고 있는 김병수(26·남)씨는 “사실 경기 자체에 관심이 더 커서 예능형 영상은 한두 번 보고 잘 안 보게 된다”면서도 “(구단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덕분에 기존 하이라이트 영상의 질도 좋아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스냅타임 윤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