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슈즈' 홍성호·김상진 감독 "픽사를 키운 스티브 잡스가 필요한 때"

  • 등록 2019-07-15 오전 12:40:00

    수정 2019-07-16 오후 2:54:21

애니메이션 ‘레드슈즈’의 홍성호(왼쪽부터) 감독과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사진=라인프렌즈)
[이데일리 고규대 기자] “픽사의 성공을 만든 스티브 잡스같은 걸출한 리더가 필요한 때죠.”

영화 ‘레드슈즈’의 홍성호 감독과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이 입을 모았다. 애니메이션이 투자 수익률이나 문화 영향력에서 부족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에만 머물고 있는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이끄는 선두주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순제작비 3억7천만엔으로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약 4200억원을 벌어들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원작은 실사 영화로 제작돼 국내에서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파급력을 한번 보세요. 유보금 생기면 부동산 사들이는 기업가보다 미래를 보고 픽사에 참여한 스티브 잡스같은 인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애니메이션이 CG와 결합한 요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얼마든지 가능하거든요.”(김상진 감독)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에 참여한 홍성호 감독과 디즈니에서 ‘주먹왕 랄프2’ ‘겨울왕국 2’ 등에 참여한 김상진 감독이 ‘레드슈즈’에서 힘을 합쳤다. 홍성호 감독은 ‘레드슈즈’의 총연출을, 김상진 감독은 애니메이션 감독을 맡았다. ‘레드슈즈’는 홍성호 감독이 쓴 시나리오가 2010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시작됐다. 애초 제목은 ‘빨간구두와 일곱난쟁이’였다. 빨간 구두를 신어야 공주가 되는 스노우화이트와 저주에 걸려 초록 난쟁이가 된 일곱 왕자가 그 주인공이다. 기존 동화의 캐릭터를 뒤집고 비틀어 현대인들의 오해와 편견을 꼬집은 작품이다.

“세계 배급을 목표로 한 애니메이션이어서 투자금을 모으는 게 어려운 일이었죠.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서 초기 지원금을 받았지만 실제 진행될지 미지수였죠. 한 벤처투자사에서 50억원으로 물꼬를 트면서 월드릴리즈가 가능하게 됐습니다.”(홍성호 감독)

홍성호 감독의 시나리오는 투자 진행과 함께 20년 남짓 디즈니에서 근무한 김상진 감독이 합류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두 감독은 누구나 봐도 부담이 없는 친숙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결론은 익숙한 소재, 색다른 설정이었다.

애니메이션 ‘레드슈즈’에는 클레이 모레츠, 샘 클라플린, 지나 거손, 패트릭 워버튼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에 참여했다.
두 감독의 열정 끝에 프로덕션에 들어간 지 3년 만에 오는 25일 개봉하게 됐다. 러닝타임 92분, 총 제작비 200여억원이 든 ‘레드슈즈’는 시사회 당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견줄만한 만듦새에 많은 이들의 박수와 응원을 받았다. 표정이나 손동작 등 미세한 움직임까지 깔끔하게 완성해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요즘 애니메이션은 소프트웨어의 기술력과 아티스트의 감각이 합쳐진 결과물이라고 봐야 합니다. 디즈니나 픽사가 자신들만의 소프트웨어로 만드는 반면 우리 제작진은 상용화된 소프트웨어를 변형해 애니메이션을 만듭니다. 그러니 기술적 역량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고 봐야 합니다. ‘라푼젤’에서 공주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장면이나 ‘모아나’에서 물에 젖은 캐릭터의 외양처럼 섬세한 장면을 아직 따라가기 어렵죠. 그 때문에 감성이나 감각, 시나리오의 중요성도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김상진 감독)

두 감독은 ‘레드슈즈’가 국내 애니메이션의 제작 능력을 한 단계 성장시킨 작품이라고 단언했다. 디즈니에서 숱한 작품을 만들어낸 김상진 감독은 캐릭터 디자인을 시작으로 애니메이션까지 각 업무에 자신의 노하우를 쏟아냈다. 제작 초기 학생을 가르치듯 하나부터 열까지 각 스태프의 작업에 힘을 보탰다. 점차 모델링, 맵핑, 애니메이팅, 라이팅 등 세분화된 제작 분야가 효율을 갖추면서 제작에 속도가 붙었다.

“애니메이션은 넷플릭스 등 OTT로 배급할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되면서 폭발적 성장이 가능한 분야입니다. ‘레드슈즈’를 제작하면서 디즈니와의 기술적 격차뿐 아니라 제작 노하우의 갭도 줄일 수 있게 됐습니다. 국내에 제대로 된 제작 ‘파이프라인’을 갖춘 스튜디오가 적지만, 그만큼 해야 할 일이 앞으로 많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홍성호 감독)

홍성호·김상진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이정표를 제시했다. 아직 제대로 된 성공사례가 없으니 스티븐 잡스같은 사명감 있는 기업가도, 몇십 년을 쏟아붓는 애니메이터도 찾기 어렵다. “‘레드슈즈’는 순간마다 벽을 만나고 그 벽을 넘은 도전의 결과물”이라는 게 두 감독의 설명이다. 이들은 국내 애니메이션의 현재가 어디쯤인지, 앞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레드슈즈’로 답을 내놓고 있다.

애니메이션 ‘레드슈즈’의 홍성호(왼쪽부터) 감독과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사진=라인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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