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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독립기념일을 지키는 나라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고대 이집트로부터 독립한 날을 기념해 유월절이라는 명절을 지킵니다. 대략 4월 19일 전후에 이 명절이 시작하는데요. 이 날 유대인들은 ‘세데르’라는 독특한 식사를 합니다.
급한 피난길을 준비하느라 발효하지 않은 빵을 먹었던 조상을 기억하며 누룩없는 음식만 먹지요. 그렇다고 유월절 식사가 피난민 음식처럼 소홀한 건 아니랍니다. 식사 자리에서 각 가정의 막내는 어른에게 ‘왜 오늘 밤은 다른 밤과 구별되나요?’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면 어른들이 이스라엘의 속박과 해방의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주지요.
유월절에 대한 신념이 유난스러운지라 이 기간을 앞두고 이스라엘에서는 재미난 일이 일어납니다. 많은 가정들이 대대적인 청소를 하고 모든 빵을 먹어버리거나 남으면 기부도 합니다.
그리고도 남는 음식은 랍비에게 맡겨 비유대인에게 팔아달라고 하지요. 집안의 빵가루를 하나도 남기지 않으려고 전문 청소업체를 동원해서 샅샅이 청소도 한답니다. 청소하는 참에 가구를 바꾸기도 하는데 이스라엘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이 이 시기에 싼 값을 치르고 가구를 장만하는 진풍경도 볼 수 있지요.
식사예절과 규칙을 가진 공동체는 최소 하루 세 번 공동체의 가치를 기억하게 됩니다. 해마다 유월절 음식을 챙겨먹는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에게 속박과 해방의 역사를 가르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추석 송편이나 동지 팥죽을 먹지만 광복절 음식은 따로 정해두고 먹지는 않지요.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독립기념관에서 정부주도의 광복절 기념행사를 치르고 이를 TV로 중계하는 데에서 그치는 우리 사회를 돌아봅니다. 대한민국을 만드신 선조들께 감사하는 마음이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네요.
올해 3.1절에는 양재동에 위치한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질문이 있는 식탁, 유대인 교육의 비밀’을 집필한 심정섭씨가 마련한 행사에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참가해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유대교육 전문가가 우리 명절의 의미를 되살리는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스타벅스는 진동벨을 주지 않아요. 이것은 커피를 주문한 손님들이, 바리스타가 그들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신의 음료를 마시고자 하는 사람이 감히 자리에 앉지 못하고 사제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서있는 것처럼요.
불편한 격식과 절차가 고객의 충성심을 끌어 올리다는 연구결과를 잘 아는 영리한 기업이 고대의 제사 의식을 현대 자본주의 버전으로 포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그 시스템에 순종하고 있는 것이고요.
어떤가요? 자본주의 기업이 만든 의식은 따르면서 우리 명절과 국경일을 기억하는 노력은 무시하실 참인가요? 저희 가정은 아침식사 전에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합니다. 아침밥을 먹은 후 세 아들은 하루 일정을 브리핑하고요. 불편해 보이는 절차과 격식은 사실 우리 삶에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을 제공합니다. 우리 사회, 우리 가정에 필요한 격식과 절차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