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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1. “양쪽 팔 좀 올려달라”. 제복을 입은 검색원이 금속탐지기로 몸수색을 했다. 이번엔 탑승심사다. “야동 언제 봤느냐?” 탑승심사직원이 남자 고등학생에게 표를 달라며 물은 말이다. “중3 때요.” 말이 떨어지자 탑승심사직원은 표 뒤에 ‘A+’라고 적어 학생에게 건넸다. 공항이 아니다. 최근 막 내린 연극 ‘비행소년 KW4839’(이하 ‘비행소년’)를 보기 위해 관객이 치러야 했던 절차다.
2. 정육점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 조명. 사내가 알몸으로 섰다. 장소는 대중목욕탕. 이발하러 의자에 앉는가 싶더니 밀가루 반죽을 뒤집어쓴다. 목욕탕 직원이 사내의 하얀 얼굴 위로 빨간색과 녹색 물감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11월 초연된 연극 ‘사보이사우나’의 한 장면.
기발하면서도 파격적이다. 연출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된 여신동(37)이 만든 새로운 세계다. ‘젊은 피’라고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무대디자인에서는 가장 핫한 창작자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한 해도 무대예술상을 놓친 적이 없다. 연극 ‘헤다가블러’부터 뮤지컬 ‘모비딕’까지. 여신동이 무대에 세운 세상은 강렬했다. 독창성을 인정받아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2009년 2편이던 작품 수는 올해 상반기에만 박칼린의 ‘미스터쇼’, 연극 ‘메피스토’ 등 7편으로까지 늘었다. 그야말로 승승장구다.
지난주 서울 삼선동 한성대 인근 가정집. 여신동은 작업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미국에 간다”고 했다. 오는 9월부터 잠정 휴업이다. 탄탄대로를 걷던 그가 왜 갑자기 짐을 싸는 걸까. 여신동을 만나 속 깊은 얘기를 들었다.연출, 무대디자인, 출국 그리고 남달랐던 사춘기까지.
“이미지가 언어인 시대…그 방식 택한 것”
- 무대디자이너가 공연 연출에 나선 건 처음 아닌가. 욕심 낸 이유가 궁금하다
△연극을 보며 이야기 전달 방식이 일방적이고 때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통 방식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텍스트 중심에서 감각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시대적인 흐름이라고도 생각했다. 이미지가 언어인 시대다. 진중권도 ‘이미지 인문학’에서 그랬잖나. 이미지를 못 읽는 자가 미래의 문맹이 될 거라고. 난 감각에 대한 믿음이 있다.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사람의 글이 아니라 한 번의 포옹으로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거니까. 난 그 방식을 택한 거다.
- 이미지로 소통하는 일은 무대디자이너로도 할 수 있지 않나
△공연과 관객이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 늘 고민했다. 무대디자이너로서는 그 작업에 한계가 있고. 누군가 정해준 틀에 맞혀가야 하니까. 가령 사진 하나를 가져와 ‘이런 느낌의 무대를 꾸몄으면 좋겠다’고 요구하는 연출도 있고. 방향이라도 확실하면 편한데, 이미지 표현 훈련이 서툰 연출의 애매한 느낌에 맞춰 일할 때 너무 힘들다. 어떤 작품은 여섯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신인 때도 아니었는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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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체험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다
△예술이라는 게 결국 작품과 사람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간극을 좁힐 수 있고. 예술은 비현실의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일이다. 그래서 관객이 작품 안으로 들어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비행소년’을 하며 극장 안에 들어가기까지 관객이 체험하는 상황을 심어놓은 것도 그런 이유다.
“무대디자이너는 튀지 않는 공기 같은 존재”
- 무대디자인이 굉장히 독특한데 작업할 때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게 있다면
△‘튀지 말자’다. 날 죽이는 일이 필요하다. 무대는 이야기와 배우 등 모든 걸 담는 그릇이다. 나(무대디자이너)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배우와 이야기를 보여줘야 하는 거잖나.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흐르는 무대를 보여주려 노력한다. 물론 일을 시작할 때는 욕심도 냈다(웃음). 하다가 깨달은 것도 있고.
-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 뭐였나
△비밀이다. 말하면 대놓고 보지 말자는 건데(웃음). 기억에 남는 건 연극 ‘목란언니’다. 작업방식을 바꿔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기존에는 대본만 보며 나 혼자 상상했다면 ‘목란언니’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관계까지 보며 무대를 고민했다. 연습실에 가 배우들의 규칙 없는 동선을 보고 처음으로 앞뒤 다 열어놓은 4면 무대를 만든 거다.
- 무대를 보면 경험치가 남달랐을 것 같다. 연극제목처럼 ‘비행소년’이었나
“지난 한 해 동안 약 20편 무대 세워…재충전 필요”
- 그렇게 재미있게 살다가 왜 미국으로 떠나나
△지쳤다. 갑자기 주목받게 되면서 너무 심하게 달렸다. 지난 한 해 20 여편을 했으니. 건강도 안 좋다. 재충전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마흔 전에 미국 뉴욕에 가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보자는 바람도 있었고. 아무 계획 없이 간다. 1년 정도 머물 생각이다. ‘비행소년’ 이 출국 전 마지막 작품이다.
- 돈을 많이 벌었나 보다
△억울하다. 이쪽(연극)일 해선 절대 많이 못 번다. 무대디자인하면 얼마 받을 것 같나. 1년에 열 작품을 한다고 해도 내 또래 회사원 연봉 수준이다. 되레 적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대디자이너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극장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우리가 널 써주는 걸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도 깔렸고. 먹고 살려면 작품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40대 넘어선 날 좀 지키면서 일을 하고 싶다.
- 미국 다녀와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거 아닌가
△연극을 벗어나는 것도 내겐 중요한 화두다. 이것저것 실험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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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미술을 시작했다. 상도 수두룩하게 탔다. 자연스럽게 미대로 진학해 공예디자인을 전공하다 군 제대 후 삶이 바뀌었다. “큰 뜻 없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무대미술과로 들어간 게 계기였다. 진로 변경은 ‘특급 선택’이었다. 연극 ‘소설가 구보 씨의 1일’로 2010년 동아연극상 무대미술가상을, 뮤지컬 ‘모비딕’으로 2011년 한국뮤지컬대상 무대미술상을, 2012년 연극 ‘꽃’으로 대한민국연극대상 무대예술상을 탔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을 좋아한다. 영화 ‘나쁜 교육’ 등에서 보여준 날 것의 느낌이 좋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선 홍상수 감독을 꼽았다. 예술적 동지는 작곡가 정재일. ‘비행소년’ 등 두 연출작에 도움을 줬다. 그런데 좋아하는 가수는 윤상이란다. 인터뷰를 위해 연습실로 오며 들은 곡도 ‘영원 속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