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금융의 쏠림현상과 은행 비즈니스 모델

이준식 산업은행 조사분석부장/경영학 박사
  • 등록 2013-12-04 오전 6:00:00

    수정 2013-12-04 오전 6:00:00

▲이준식 산은 조사분석부장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주요 이슈로 대두된 것 중의 하나가 금융기관 건전성 강화다. 미시건전성이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면 거시건전성은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결국 전체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건전성 강화에는 군집행위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금융 쏠림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원인도 쏠림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구미(歐美) 선진은행들은 2000년대 과잉유동성으로 전통적인 예대마진 중심의 영업을 통해서는 수익창출의 한계에 직면하게 됐다. 이에 따라 선진은행들은 기존의 상업은행 모델인 ‘Lend-and-Hold 모델(이하 L&H 모델)’에서 ‘Originate-to-Distribute 모델(이하 OTD 모델)’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은행이 신용자산을 만기까지 보유하는 L&H 모델과는 달리 OTD 모델은 자산유동화를 통해 신용위험을 다양한 투자자에게 분배하는 모델로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대출 유동화도 OTD 모델에 해당된다. 이처럼 선진은행들의 사업구조가 OTD 모델로 쏠리면서 부채를 활용한 위험추구투자(Risk-seeking Investment)가 확대됐고 이는 결국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몇 몇 기존연구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은행의 군집행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기존연구를 종합하면 국내은행의 군집행위는 대출의 경기순응성이나 특정 부문 또는 산업에 대한 과잉대출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개별 금융기관의 경우 신용위험관리로 대변되는 건전성관리는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므로 경기순응적 대출패턴은 일반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민간상업은행에 비해 특수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경우 대출의 경기순응성이 약하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금융위기 직후 2009년 1~9월 중 국내은행의 대출 증감폭(전년동기대비)을 보면 특수은행은 48.3% 감소해 92.6% 축소된 일반은행(시중은행+지방은행)에 비해 감소폭이 훨씬 작은 것으로 조사됐다.

둘째, 대출시장에서의 군집행위는 특정 부문이나 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증가시키는 과잉대출로 나타난다. 특정 산업에 대한 과잉대출이 존재할 경우 동 산업(이하 과잉대출산업)의 부실은 은행권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경기회복 지연 등 경기요인이 부각되면 과잉대출산업에 대한 경기순응성은 더 확대돼 시스템리스크가 증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산업은행 조사분석부는 2004~2010년 중의 자료를 활용해 국내은행의 대출상황을 분석한 결과, 특정 산업에 대한 과잉대출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경기가 악화되는 경우 과잉대출산업은 비과잉대출산업에 비해 대출 증가율이 더 크게 축소돼 경기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상의 사례는 차별화된 금융 비즈니스 모델이 없을 때 금융 쏠림현상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금융위기시 선진은행들은 OTD 모델을 선택하면서 위기를 키워왔다. 그리고 국내은행들은 대출영업 중심의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면서 ‘Me too’ 전략을 구사한 결과 특정 부문에 과잉대출 현상을 초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이 없어 총이익의 80% 이상을 이자이익에만 의존하게 돼 대출의 경기순응성은 지속되고 있고 대출경쟁에 따른 부실여신 발생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 우선 개별 은행차원에서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모든 은행이 이자이익 중심의 수익구조를 유지하는 한 경기순응적 대출과 과잉대출 현상이 반복되고 이 과정에서 경기 악화시마다 금융리스크가 증대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차별화는 지속가능한 수익창출능력 확보와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2012년 기준 한국의 명목 GDP 규모는 1.1조달러로 전세계 15위 수준이지만 금융경쟁력은 아직 취약한 수준이다. 2013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한국의 금융경쟁력은 28위에 불과했다. 또한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 금융산업의 명목 GDP 대비 비중은 4.5%로 미국(9.1%)이나 영국(7.6%)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유사한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로서는 지속가능한 수익창출을 확보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금융의 경쟁력 제고도 어려운 상황이다. 개별 은행들이 차별적으로 견고해질 때 성장을 통한 적정 수익확보가 가능해지면서 금융의 실물지원기능도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간금융기관의 경기순응성이나 쏠림현상을 단기간 내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경기요인을 고려해야 하는 민간금융기관 영업특성상 금융위기와 같은 시장충격이 발생하면 민간금융기관의 시장실패영역은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적으로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정책금융수요는 위기 이전에 비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역사적으로 금융위기가 반복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정책금융기관의 시장실패보완 및 시장안정기능은 지속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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