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대표의 남·북극점 탐험대에는 여성 대원이 한 명씩 있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북극점을 방문한 한국인 여성이 됐다. 또다른 여성은 개인 여행자. 장 대표는 지구의 끝을 방문한 한국인 여성을 배출한 것이다. 이중 북극점을 함께 한 여성은 여행사 내에서 여행가이드 책 ‘론리 플래닛’ 출간을 담당하는 어성애 부장(45), 그의 부인이다. 어 부장의 북극점 첫 소감이 “대관령 같네”였다고 하니 그 역시 쿨한 여성이다.
여행은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힐링’이다. 여행이 힘들고 고될수록 역설적으로 집과 일상이 그리워진다. 또 일상이 지칠 때쯤 다시 ‘힐링’을 필요로 하게 된다. 반복이다. 장 대표는 조금은 다른 삶을 꿈꾸며, 조금은 다른 여행을 기치로 내걸고 신발끈여행사를 세웠다. 지난 2일, 장 대표가 유럽 몽블랑으로 떠나기 하루 전, 서울 홍익대학교 정문 옆 신발끈여행사 사옥을 찾아 그의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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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대표는 1991년 대학교 4학년 졸업반 때 신발끈여행사를 설립했다. 였다. 당시는 취업 호황기였다. 대부분 마음먹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창업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장 대표는 국내 배낭여행 1세대이기도 하다. 장 대표가 여행사를 차리겠다고 나서자 주변의 반대에 부딪혔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한 여성 후배도 합류했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이 후배도 프랑스어를 공부해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여성 배낭여행 1세대였다. 현재의 부인이다. 장 대표는 “사실 100% (여행을 좋아하는) 부인을 계속 만나기 위해 여행사를 차린 것”이라며 웃음지었다.
1988년 호주로 떠났던 ‘워킹 홀리데이’의 경험을 살려 학생 비자 대행 업무를 시작했다. 당시 배낭여행 때 도움이 됐던 책자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 출판사의 창업주 토니 휠러와 모린 휠러 부부가 모티브가 됐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휠러 부부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시아 횡단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론리 플래닛을 여행서적의 대표 브랜드로 키웠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여파는 여행업계에도 불어닥쳤다. 연매출 수천억원 규모의 대형 여행사에는 중과부적이었다. 틈새시장을 발굴해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게 흔한 여행이 아닌 완전한 새로운 여행 코스, 그의 말마따나 ‘진짜 여행지’의 개발이었다.
그는 이후 남극과 북극, 실크로드, 킬리만자로, 몽블랑, 갈라파고스 군도, 산티아고, 아마존 등등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여행 코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그가 직접 발굴했다. 그는 “푸켓, 홍콩 등 한국인이 즐겨 찾는 곳도 좋은 곳이지만 세계적인 관광지는 아니다”라며 “정말 새로운 곳을 발굴한 게 아니라 진짜 세계적인 관광지를 한국인도 찾을 수 있도록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에 있어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는 “지금까지 남극을 네 번 가 봤지만 다 다른 코스였다.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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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행사와 여행은 별개다.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는 재미있는 삶이었다.” 창업 6년 후 외환위기가 불어닥쳤다. 그도 어려웠지만 다른 사람들은 더 어려웠다. 그는 동년배 중에선 제일 행복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지인인 교수나 회사 친구들의 삶도 무료해 보인다.
그는 “의사는 매일 아픈 사람을 만나고 변호사는 매일 억울한 사람을 보지만 난 매일 재충전을 꿈꾸는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즐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독특한 여행 코스인 만큼 함께 떠나는 고객들의 면면도 독특하다. 60대 후반의 퇴직자는 물론 여행을 위해 회사를 그만둔 20대 여성도 있다.
신발끈여행사의 여행 프로그램은 고가다. 한 달 걸리는 남미 마야 유적 탐방 코스나 16일의 남극 여행은 500만원이 넘는다. 그는 “낮은 가격은 아니지만 결코 낭비는 아니다. 더 좋은데, 더 재밌는데 쓰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여행과 일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고된 남·북극점을 찾은 것도 가고 싶다는 개인적인 뜻과 함께 ‘누구나 오지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사업적 목적도 있었다. 1993년 결혼 후 신혼여행으로 호주 배낭여행을 갔고, 거기서 자신의 롤 모델이 된 휠러 부부를 만나 ‘론리 플래닛’ 한국 총판권을 따 왔다. 최근에는 가족과 함께 베트남을 종단한 후 자바~발리를 아우르는 자카르타 기차 여행 코스를 개발했다.
인터뷰 직후 떠나게 될 몽블랑 코스도 친구와 고객이 함께 어우러진다. 몽블랑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 3국이 면한 산으로, 흔치 않게 여행사 직원이 먼저 코스를 개발하고 장 대표가 그 코스를 나중에 방문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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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업계는 신발끈여행사와 장 대표를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다. 국내 여행 전문지들이 선정하는 여행업계 영향력 있는 인물 50인에 늘 장 대표의 이름이 오른다.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여행 상품이 국내 유일이다. 업계에서도 경쟁자라기보다는 동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신발끈여행사는 구조적으로도 강점이 있다. 여행상품 유통 구조가 간소화돼 있다. 통상 대형 여행사는 현지 한국인 여행사와 손잡고 여행 가이드까지 일종의 ‘하청’을 준다. 반면 신발끈여행사는 현지 가이드와 직접 계약한다. 대표가 직접 백방으로 뛰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강점 때문에 최근 초대형 정보기술( IT)기업이 그에게 인수 의향을 떠보기도 했다.
그는 최근 사업 확대에 나선다. 당장 올 하반기 7명을 더 채용한다. 직원 수로만 보면 규모가 1.5배 늘어나는 것이다. 여행으로는 가 볼 때까지 가 봤다는 그가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에 눈을 돌린 것이다. 내심 코스닥 상장의 꿈도 내비쳤다.
그는 앞으로 진짜 여행, 성숙한 여행의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여행사 프로그램 비중이 작아지고 개별 여행이 늘어나지만 이와 함께 남극 여행처럼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여행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측이다.
그는 내년쯤 중국·대만 등의 사업 파트너와 함께 국내 여행 상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일주일 일정으로 전국을 일주하는 코스다. 물론 관광버스 여행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장 대표는 워낙 세계 곳곳을 다니다 보니 땅 보는 안목도 남다르다. 지난 1991년 창업 이후 개인적인 부동산 투자로도 적잖은 이익을 남겼다. 투기가 아닌 상식에서 투자한 결과다. 그는 “최근 아파트 투자가치에 대해 의견이 많지만, 서울 시내 아파트는 동남아 대도시의 아파트에 비해 절대 비싸지 않다. 좋은 위치라면 여전히 투자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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