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조금 올랐는데 세계 두번째 부자?"

멕시코 통신재벌 카르소그룹 슬림 회장
  • 등록 2007-04-21 오전 10:00:00

    수정 2007-04-21 오전 10:00:00

[조선일보 제공] “뭐, 10년 동안 갖고 있던 주식이 조금 올랐을 뿐인데….”

멕시코 통신 재벌인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67) 카르소 그룹 회장은 지난 11일, ‘워런 버핏을 제치고 세계 부자 랭킹 2위에 올랐다’는 소식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미 유력 경제지 포브스(Forbes)의 세계 부자 순위 집계에 따르면 슬림 회장이 보유한 재산가치는 11일 현재 531억 달러(약 50조원)로, 7년 동안 2위를 지켜온 워런 버핏(524억 달러)을 밀어냈다. 슬림의 재산은 멕시코 총 생산량(GDP)의 약 7%에 해당한다.

슬림 회장의 2위 등극은 지난 두 달간 그가 회장으로 있는 카르소 그룹의 주식이 15% 상승해 약 40억 달러(3조8000억원)의 재산이 늘어난 덕분이라고 포브스는 분석했다. 그가 투자한 미국 내 무선 모바일 업체의 주식이 최근 4% 오른 것도 한몫 했다.

반면 버핏의 재산은 최근 잇따른 거액 기부로 1년 만에 약 25%가 줄었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자 1위 자리는 13년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 지키고 있다.

■ 남미를 장악한 큰 손

슬림 회장의 주력 사업은 통신이다. 멕시코 유선전화 시장의 94%를 차지하고 있는 ‘멕시코텔레콤’과 점유율 80%를 자랑하는 이동통신회사 ‘텔섹’ 등을 소유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항공, 은행, 백화점, 자동차, 담배, 정유설비 등 거의 전 업종에 진출, ‘문어발 경영’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투자하는 기업의 공통점이 뭐냐”는 한 멕시코 애널리스트의 질문에 그는 “제값보다 훨씬 싸거나, 더 잘할 수 있는데 경영자를 잘못 만나 고생하는 기업”이라고 대답했다.

멕시코는 ‘슬림의 땅(Slim land)’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가 고용하고 있는 멕시코 근로자만 25만 명이고, 멕시코의 알짜배기 땅을 수십만평 갖고 있다. 워낙 많은 사업체를 소유해 멕시코인들은 슬림이 만든 물건을 하루에 한 번 이상 사게 돼 있다는 우스갯 소리도 나온다.

슬림 회장은 레바논 출신의 멕시코 이민자 아들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40년 전인 26세 때부터. 그는 “멕시코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신념에 따라, 멕시코가 내전에 휩싸일 때마다 기업을 헐값에 사들였다. 어떤 기업은 매입 가격 대비 3000배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가장 성공적인 사업 인수는‘텔멕스’였다. 1990년대, 금융 위기로 허덕이던 멕시코 정부가 국영회사의 민영화를 추진하자, 그는 재빨리 텔멕스를 인수해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최소한의 조직만 남겨 놓고 모두 잘라낸 뒤, 통신 요금을 인상한 것. 비판 여론이 들끓었지만 이를 계기로 슬림 회장은 멕시코 통신산업을 장악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영향력을 남미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도미니카 공화국의 최대 통신회사인 ‘베리손 도미니카’를 인수하는 등 현재 남미 16개국에서 통신사업을 하고 있다. 콜롬비아 케이블TV ‘수퍼뷰’와 ‘케이블파시피코’, 브라질 전화회사 ‘엠브라텔’도 모두 그의 소유다.

■ 아무도 손댈 수 없는 거물

슬림 회장의 존재는 멕시코의 빛과 그늘이다. 그는 국가 통신사업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과 사회에 기부하는 금액이 버는 것에 비해 너무 적다는 이유로 고약한 비난을 받는다.
 
특히 지난해엔 190억 달러나 벌고도 자신 소유의 건강연구재단에 4억5000만 달러밖에 기부하지 않아 전 재산의 85%를 기부하기로 한 워런 버핏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사업가는 산타클로스처럼 돌아다니며 기부하는 것보다 기업을 튼튼하게 만들고 고용을 창출함으로써, 사회에 공헌한다”고 반응했다. 그의 신념은 가난은 자선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

그렇긴 해도 멕시코인치고 슬림 회장의 혜택을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위기에 빠진 여러 기업에 자금을 대줘 회생시키는가 하면, 빈민(貧民) 사이에 지지를 얻고 있는 정치인, ‘로페즈 오브라도르’를 돕고 있다. 최근엔 국가 공영방송이었던 ‘텔레비자’와 2대 TV 방송국인 ‘아즈테카’의 빚을 대부분 떠안아 처리해 멕시코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런 그를 두고 멕시코의 정치학자 데니스 드레서(Denise Dresser)는 최근 지역 신문에 이렇게 썼다. “이제 슬림은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는(unnameable) 거물로 대접 받고 있다. 이제 어떤 용감한 미디어도 흠집 낼 수 없으며, 어떤 정부당국자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가 됐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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