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의 정치개입 역사[한반도 24시]

과거 관료적 권위주의 통해 압축 성장한 韓
성장 과실이 노동자·농민 확산해 중산층 만들어
중산층이 민주화 주역으로 다시 1987년 체제로
北, 中과 달리 사상적 조절 없이 軍 중심 외화벌이
  • 등록 2025-01-13 오전 5:00:00

    수정 2025-01-13 오전 6:11:29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해이자 분단 80년이 되는 해다. 우리 내부에서는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체포를 둘러싸고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1월 20일 우리의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이른바 ‘세계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고 ‘정세관리’를 강조했던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추진하며 ‘군사 강국’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 전 통일연구원장
한국에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그레고리 핸더슨이 1968년에 쓴 책의 제목이 ‘코리아: 소용돌이의 정치’(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다. 동질적인 전통사회를 유지해왔던 한국이 일제 식민 통치를 겪고 해방과 동시에 분단된 이후 중앙집권화한 통치구조에 정치적 동원과 군부의 정치개입이 이뤄지는 정치과정을 ‘소용돌이의 정치’로 집약한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군은 입법부, 사법부처럼 ‘군부’라는 하나의 제도로서 정치개입이 이뤄지기도 했다. 북한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군부의 정치개입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번 계엄선포 과정에서도 북한 변수가 등장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드러났지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교정 메커니즘’이 작동한 것은 시민사회의 역량이 커졌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일부 군 인사가 가담해 일으킨 ‘친위 쿠데타’가 실패한 것은 ‘제도로서의 군부’가 정치개입에 소극적이거나 반발했기 때문이다. 군의 정치개입은 ‘1987년 체제’ 수립과 하나회 척결로 사라지는 듯했다. 이번에 군을 동원한 정치개입 시도를 계기로 과거 군부의 정치개입을 되짚어 본다.

박정희와 전두환 개발독재시대에 군부와 관료, 재벌(자본)이 지배동맹을 맺는 ‘관료적 권위주의’를 통해 압축 정상을 이뤄냈다. 자본과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유치를 통한 개발촉진 전략’을 채택한 박정희 정권은 저임금과 저곡가(이중곡가제) 정책을 통해 노동자와 농민의 분배 요구를 억압·배제하고 재벌을 육성해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성장의 과실은 노동자와 농민 등 근로자들에게 확산해 중산층을 만들어냈다. 개발독재가 만들어낸 중산층이 민주화의 주역이 돼 대통령 5년 단임제의 ‘1987년 체제’를 만들어 냈다.

박정희 정권은 마산자유무역지대 등을 설치하고 외국자본 유치에 국가가 지불보증을 하는 등의 특혜를 베풀며 노동운동에 공권력을 동원해 기업 활동을 지원했다. ‘유치를 통한 개발촉진 전략’은 중국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에 입각한 특구설치 전략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군부에 의한 개발독재를 공산당에 의한 개발독재로 원용해 중상주의적인 발전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나라가 중국이다. 사회주의 붕괴 직후인 1991년 북한도 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을 원용해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설치하고 외자 유치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중국은 ‘진리의 표준은 실천’이라는 실사구시를 내세우고 생산력 발전에 유리하다면 자본주의도 수용할 수 있다는 ‘흑묘백묘론’(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따지지 않고 쥐를 많이 잡는 것이 좋다는 실용론)에 따라 해안지구에 특구를 설치하고 외국자본을 적극 유치해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중국이 생산력 발전을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상이론적 조정을 했다면 북한은 사상이론적 조정 없이 경제특구를 설치하고 외자 유치를 하고자 했기에 실패했다. 자본은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 투자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북한은 자력갱생을 고집하며 파병을 통해 외화를 획득하고 군 인력을 국가발전의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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